항목 ID | GC40001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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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美軍政聽 大邱府顧問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시기/일시 | 1945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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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공공기관 |
설립자 | 미군정청 |
1945년 11월 대구광역시에 설립된 경상북도군정청 소속 행정 고문 기구.
1945년 11월 경상북도군정청은 미군정청 특사로 파견된 서상일(徐相日)과 최윤동(崔允東)의 추천을 수용하여 에드윈 A. 헨 경북도지사가 발표하는 방식으로 대구부 행정고문을 선정하였다. 미군정청 대구부고문은 경북군정청의 협의기관적 성격을 가졌다.
미군정청 대구부고문은 미군정청의 시정 방침을 일반 대중에게 주지시키고, 대중의 여론을 수렴하여 군정에 반영하는 역할과 행정 및 행정기관의 개혁에 협력할 것을 목적으로 설치하였다. 또 군정 당국에 조력하여 군정의 원활한 운영에 협조하고, 한국인의 자치 능력을 보여 줌으로써 국가 건설을 촉성하는 목적도 있었다.
미군정청 특사는 1945년 11월 3일 대구를 방문하여 11월 5일 경상북도군정청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상북도군정청의 행정고문과 부·과장급 실무진을 추천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천 기준은 비일본적이고 민주적이며 신망이 높은 사람이 될 것이라 밝혔다. 행정고문은 민선 고문 기관에 앞서 관선 기관을 정돈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미군정청 대구부고문은 김태희(金兌熙), 정운기(鄭雲麒), 박래승(朴來昇), 김하정(金夏鼎), 이재영(李在榮), 윤용기(尹龍基), 양규식(梁奎植), 김종구(金鍾耈) 등 8명으로 구성되었다. 미군정청 대구부 관선 행정고문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제외된 채 민족주의 계열이 다수를 이루었다. 일제강점기 사회운동 활동 이력이 있는 사람은 정운기와 김하정 등 두 명 정도였다.
미군정청 민선 대구부고문은 이정우(李廷雨), 김성곤(金成坤), 최임출(崔壬出), 이상훈, 김주호(金周鎬), 정완수(鄭浣秀), 전병희(全炳熙), 엄성문(嚴成文), 최규택(崔圭澤), 서달수, 신윤승(申允承), 이상문(李相文), 이종완(李種完), 배영기(裵永璣), 김승환(金承煥), 배정기(裵永璣), 서정도(徐正度) 등 17명이었다. 이에 관선과 민선을 모두 합하여 대구부 고문은 25명으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김성곤과 이상훈은 좌익계 인물이었다. 민선 고문은 관선 고문과 달리 친일 협력의 경험이 있는 자들이 선출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미군정청 대구부고문은 경상북도군정청 당국의 군정 운영에서 주요 기반이 되었다.
미군정청 대구부고문은 경상북도군정청의 협의기관적 성격을 가지면서 민선 도고문에 선행하여 추진되었다. 경상북도군정청의 협조자인 동시에 우익 정치세력의 관료화에 일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