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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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東榮[達城郡] |
영어공식명칭 | Gwak Dongy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남정원 |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 유가읍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에서 태어난 곽동영(郭東榮)[?~?]은 비밀 결사 단체 ㄱ당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ㄱ당은 1928년 4월 무렵 대구에서 문상직(文相直)과 신간회 대구 지회 회원 노차용(盧且用)·장택원(張澤遠)·정대붕(鄭大鳳) 등이 신간회나 근우회를 통한 야학 운동과 강연회 활동으로서는 독립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보다 더 직접적인 방략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여 조직한 단체이다. ㄱ당은 중국 광동(廣東)의 군관 학교(軍官學校)에 청년들을 유학시키고, 만주 방면에 미간지를 개간하고 실력을 양성하여 독립을 실현한다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곽동영은 1928년 6월부터 ㄱ당에 가입해 대구와 달성군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곽동영은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928년 6월 11일 오후 9시 노차용과 함께 대구의 부호 김교식(金敎式) 집에 들어가 잡지 발행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위협하여 5,000원의 약속 어음을 적게 했다. 김교식은 도장을 숙부가 가지고 있으니 후일 등기 우편으로 보낼 것을 약속해 밤을 세우고 12일 아침에 나왔으나 정보를 입수한 대구 경찰서의 경찰에 의해 곽동영과 노차용을 비롯한 조직원들이 검거되면서 ㄱ당은 해체되고 말았다. 곽동영은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기소 당했지만 대구 지방 법원에서 1928년 8월 2일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