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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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居正[達城郡] |
영어공식명칭 | Seo Geojeong |
이칭/별칭 | 강중(剛中),사가정(四佳亭),정정정(亭亭亭),문충공(文忠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수환 |
출생 시기/일시 | 1420년 - 서거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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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38년 - 서거정 생원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38년 - 서거정 진사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44년 - 서거정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54년 - 서거정 집현전 응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56년 - 서거정 성균 사예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57년 - 서거정 사간원 우사간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58년 - 서거정 공조 참의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60년 - 서거정 이조 참의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60년 - 서거정 형조 참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67년 - 서거정 형조 판서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69년 - 서거정 호조 판서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69년 - 서거정 우참찬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71년 - 서거정 좌리 공신 책봉 |
활동 시기/일시 | 1472년 - 서거정 대사헌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76년 - 서거정 우찬성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78년 - 서거정 홍문관 대제학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79년 - 서거정 이조 판서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83년 - 서거정 좌찬성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85년 - 서거정 세자 이사 겸직 |
몰년 시기/일시 | 1488년 - 서거정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488년 - 서거정 문충 추시 |
묘소|단소 | 서거정 묘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왕림리 |
사당|배향지 | 귀암 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달성 |
대표 관직 | 좌찬성 |
[정의]
조선 전기 「대구 십영(大丘十詠)」을 지은 문신.
[가계]
본관은 달성(達城). 자(字)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정정정(亭亭亭). 증조할아버지는 전객사(典客事)를 지낸 서익진(徐益進)이고, 할아버지는 호조 전서를 지낸 서의(徐義)이다. 아버지는 목사(牧使)를 지낸 서미성(徐彌性)이며, 어머니는 문충공 권근(權近)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군사(郡事) 김여회(金如晦)의 딸 선산 김씨(善山金氏)와 능직(陵直)을 지낸 이영근(李寧根)의 딸 이씨(李氏)이다.
[활동 사항]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조수(趙須)와 유방선(柳方善) 등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유학뿐 아니라 천문·지리·의학·풍수 등 다방면에 걸쳐 조예가 깊었다. 1438년(세종 20) 생원·진사 양시(兩試)에 모두 합격한 뒤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였다. 1444년(세종 26) 문과에 급제한 뒤 사재감 직강(司宰監直講)을 거쳐 집현전 박사(集賢殿博士)가 되었다. 1452년(문종 2) 사은사(謝恩使) 수양 대군(首陽大君)의 종사관(從事官)으로 명나라에 가던 중 모친상을 당해 되돌아왔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나자 수양 대군을 지지하였고, 이후 권력의 핵심에서 활동하게 된다.
1454년(단종 2)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1456년(세조 2) 성균 사예(成均司藝), 1457년 사간원 우사간(司諫院右司諫), 1458년 공조 참의(工曹參議), 1460년 이조 참의가 되었으며, 그 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서 문명(文名)을 얻었다. 사신으로 돌아온 후에는 형조 참판에 올랐으며, 1467년(세조 13) 형조 판서, 1469년 호조 판서와 우참찬(右參贊)에 임명되었다. 1471년(성종 2) 좌리 공신(佐理功臣)에 책봉되어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1472년 대사헌(大司憲), 1476년 우찬성(右贊成), 1478년 홍문관 대제학, 1479년 이조 판서, 1483년 좌찬성(左贊成), 1485년(성종 16)에는 세자 이사(世子貳師)를 겸하였다.
[학문과 저술]
서거정은 서울에서 관직 생활을 하면서 고향을 그리는 많은 문학 작품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대구 십영(大丘十詠)」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대구 십영」은 칠언 절구 10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구도호부 지역의 절경 열 곳을 노래한 것이다. 제1영은 금호 범주(䔷湖泛舟)[금호강의 뱃놀이, 대구광역시 달성군·달서구·북구·동구를 흐르는 금호강], 제2영은 입암 조어(笠巖釣魚)[입암에서의 낚시,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의 건들 바위], 제3영은 귀수 춘운(龜峀春雲)[거북산의 봄 구름,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의 연귀산], 제4영은 학루 명월(鶴樓明月)[금학루의 밝은 달,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의 경상 감영], 제5영은 남소 하화(南沼荷花)[남소의 연꽃,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동의 성당못 또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의 영선 못], 제6영은 북벽 향림(北壁香林)[북벽의 향림,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의 측백수림], 제7영은 동화 심승(桐華尋僧)[동화사의 승려를 찾음,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동화사], 제8영은 노원 송객(櫓院送客)[노원에서의 송별, 대구광역시 서구·북구의 팔달교 인근], 제9영은 공영 적설(公嶺積雪)[팔공산에 쌓인 눈,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제10영은 침산 낙조(砧山落照)[침산의 저녁노을,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 오봉산]이다.
시문집으로 『사가집(四佳集)』이 전하는데, 시집(詩集) 25권, 시집 보유(詩集補遺) 3권, 문집(文集) 6권, 문집 보유(文集補遺) 2권, 합 2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외에도 『동인시화(東人詩話)』, 『동인시문(東人詩文)』, 『필원잡기(筆苑雜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등을 저술하였다. 또한 공동으로 편찬한 관찬서로 『경국대전(經國大典)』,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동문선(東文選)』, 『역어지남(譯語指南)』, 『오자주석(吳子注釋)』, 『역대연표(歷代年表)』, 『신찬동국여지승람(新撰東國輿地勝覽)』, 『동국통감(東國通鑑)』, 『오행총괄(五行摠括)』이 있다.
[묘소]
서거정의 묘는 원래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에 있었는데 개발로 인해 1975년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왕림리로 옮겨졌다.
[상훈과 추모]
1488년(성종 19) 문충(文忠)을 시호로 받았다.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의 귀암 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