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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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百合保育院 |
이칭/별칭 | 천주교 보육원,대구 수녀원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4길 111[남산동 190-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보미 |
개관|개장 시기/일시 | 1915년 10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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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91년 3월 - 백백합보육원 폐소 후 백합어린이집으로 개원 |
최초 설립지 | 백백합보육원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4길 111[남산3동 190-1]![]() |
성격 | 복지시설 |
전화 | 053-252-5508[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
홈페이지 | http://www.spctaegu.or.kr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에서 개원하였던 대구 최초의 아동보호시설.
백백합보육원(白百合 保育院)은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에서 개원하여 1991년 폐소한 대구 최초의 아동보호시설이다. 백백합보육원은 6·25전쟁 동안 수많은 전쟁고아를 보살폈다.
백백합보육원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았거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동들을 양육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아이들을 돌보던 수녀들은 많은 아이들이 심적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껴 영아들만 양육하기로 하였다. 6세 이전의 아이들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하여 외국으로 입양 보내기도 하였고 남은 아이들은 고등학교 교육과 기술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백백합보육원은 ‘천주교 보육원’으로도 불리던 대구 수녀원 설립과 동시에 1915년 10월 15일 드망즈(Demange) 주교가 당시 계산성당 교우 가정에서 위탁하여 양육 중인 고아 30명을 수녀들에게 위탁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수녀원 내 작은 방에서 양육하기 시작한 것이 보육원 설립의 시초이다. 1925년 보육원 건물을 지었으며, 아동의 수가 점점 늘어나 1947년에는 250명이 되었고, 6·25전쟁 후에는 400명의 아이를 수용하였다. 그 후 보육원 아동의 수가 점점 줄어들어 1988년부터 1991년 2월까지 운영하던 일시 보호소를 폐소하였다. 백백합보육원은 1915년부터 1991년까지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오갈 곳 없는 아동들을 보살폈으며, 약 1만 2355명의 아동이 거쳐 갔다.
1991년 백백합보육원 폐소 후 가장 낮은 자를 우선적으로 돌보고자 하는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지속하는 방안으로 1991년 3월 백합어린이집을 개소하였다. 백합어린이집은 지역의 영세민, 맞벌이 부부,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다. 백합어린이집은 만 2세~만 5세 반 총 19개 반이 있으며, 표준 보육 과정과 누리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몬테소리 교육을 실시하여 창의적이고 자연과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아는 세계관을 가진 시민으로 육성하고자 한다. 교육 목표는 영유아의 전인적인 성장, 감동을 주는 교육, 행복한 어린이집, 희망찬 어린이집이다. 백합어린이집의 교직원은 원장, 원감, 교사, 보조교사, 행정 직원 등 36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