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충주시 안림동·용탄동·종민동에 걸쳐 있는 산. 원래 이름은 심항산(心項山) 또는 오동산(梧桐山)·계족산(鷄足山)이라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오동나무가 무성했기 때문에 오동산이라 했고, 백제시대에 지네[百足蟲]가 많아 퇴치하기 위하여 닭을 한 무리 방목하니 백족충이 없어져서 계족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1958년에 계명산(鷄鳴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해발...
기원 전후부터 후삼국시대까지 충청북도 충주시의 역사와 문화. 중국의 『삼국지(三國志)』에는 3세기 한반도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한반도의 중부와 남부 지역은 마한·변한·진한으로 구분되었으며, 70여 개의 소국(小國)이 있었다. 백제와 신라도 각각 백제국(伯濟國)과 사로국(斯盧國)이란 이름의 소국으로 등장하여 주변 소국들과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였다. 한국 고대사회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중리 원신중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충주는 고대에 삼국이 모두 지배한 고장이다. 백제는 충주를 처음으로 지배했으며, 근초고왕과 근구수왕 때 최대 판도를 이루었다. 고구려는 이미 400년 광개토왕이 신라 내물왕을 원조할 때 충주에 들어와 실제로 군대를 주둔시켜 지배했다는 설과 장수왕의 남하정책에 따라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할 때 충주...
진흥왕은 재위 12년째를 맞은 551년에 나라를 새롭게 열겠다는 의지로 연호를 ‘개국(開國)’으로 고친다. 개국의 의지를 실천하여 신라의 중흥을 이룩한 진흥왕의 일대 사업은 국경 지대의 요충인 낭성(娘城) 순수에서 우륵의 신가(하림조)를 접한 이후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진흥왕과 우륵(于勒)의 만남에는 어떠한 수수께끼가 있음이 분명하다. 다음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