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덕마을에 사람들이 언제부터 살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난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던 이곳은 폐허가 되었다한다. 그러던 중 1595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장남 진인대군의 후손인 이덕량(李德樑)이 난을 피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덕량[1576~1651]의 자는 하경(厦卿)이고 처음 이름은 덕명이었다....
입향조 이덕량의 자는 하경(厦卿)이고 처음이름은 덕명(德明)이라 했으며, 어려서는 현덕(玄德)이라 불렀다가 다시 덕량으로 바꾸었다. 그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장남인 진안대군 이방우(李芳雨)의 9세손이다. 만년에 벼슬하여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에 이르렀으며 통정대부 호조참의에 증직되었다. 묘소는 풍덕의 동북쪽 사락리 산 60의 엄동 황금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그에게는 아들이 셋이...
조선 중기 전주이씨 진안대군파 충주 입향조. 본관은 전주(全州). 아명은 현덕(玄德), 초명은 덕명(德明), 자는 하경(厦卿). 진안대군의 후손으로 슬하에 이연지(李延芝), 이연명(李延蓂), 이연래(李延萊) 3남을 두었다. 1576년(선조 9) 충청도 괴산에서 태어난 이덕량은 1590년대 현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로 이주하여 정착한 전주이씨 진안대군파 입향조이다. 관직으로는 행용양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