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국
-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소태면 동쪽 끝 산기슭에 있다 하여 동막(東幕)이라 하였다. 동막리는 야동리(冶洞里)에서 국도 19호선을 따라 동쪽의 엄정면으로 넘어가는 강달고개 위아래 산기슭에 형성된 마을로,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따르면 성태양면(省台陽面) 율현리(栗峴里)였다. 1914년 4월 1일...
-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 옛날에 성태양면(省太陽面)이라 칭했으며, 율현리(栗峴里)·덕산동(德山洞)·청룡동(靑龍洞)·무동(武洞)·조기암리(造奇岩里)·부동리(釜洞里) 등의 6개 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조선 중기에는 태양면(台陽面)·태양소내면(台陽小內面)이라고도 불렀으며, 중청동(中靑洞)의 자작에서 해마다 성황제를 올리는 풍습이 전해 오고 있...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필보(弼輔), 호는 매헌(梅軒)·봉주(鳳洲). 훈신 석번(碩藩)의 후예이다. 1576년(선조 9) 충주에서 태어난 이성국(李誠國)은 1591년(선조 24) 15세 어린 나이로 사마시에 급제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3년 세 차례나 적진으로 들어가 왜장 사야가[沙也可, 조선이름 김충선(金忠善)]를 설득...
-
조선 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자선가. 이처인의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경택(敬宅), 호는 쌍오당(雙梧堂). 효자로 이름난 이성국(李誠國)의 후손이다. 고종 대에 의관(議官)을 지냈으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자선가로 활동하였다. 남보다 특별히 자선심이 많아서, 흉년이 들 때마다 전곡(錢穀)으로 가난한 사람을 진휼(賑恤)하고, 혼례를 못하는 자를 일일이...
-
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충신·효자·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건축물. 정문이란 정려(旌閭)라고도 하며,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여 그 집이나 마을 앞에 세운 건축물을 말한다. 대개 붉은 살을 두른 사방 한 칸 형식이나 문중 정려를 한 곳에 모아 여러 칸으로 만들거나 가옥의 출입구에 현판을 단 경우도 있다.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는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건립되기...
-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배출된 충신, 효자·효부, 열녀의 총칭. 충주에는 많은 충신들이 있다. 1760년(영조 36)에 편찬된 『여지도서』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백기당(白旗堂) 조웅(趙熊)을 비롯한 4명이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환여승람』에는 11명,『충주시지』에는 11명이 기록되어 있다. 충주 출신으로 나라와 향리에 헌신한 인물들이 많이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