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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채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1003
한자 仁川蔡氏
영어의미역 Incheon Chae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행정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헌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행정리 지도보기
집성촌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행정리[퇴곡]
입향시기/연도 조선 중기/1618년 경연표보기
성씨시조 채선무(蔡先茂)
입향시조 채영우(蔡瀛佑)

[정의]

채선무를 시조로 하고 채영우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성씨.

[연원]

시조(始祖) 채선무(蔡先茂)의 선계(先系)에 대해서는 문헌이 없다. 채선무는 고려 중기에 동지사(同知事)를 지내고,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에 추증(追贈)되었다. 인천에 세거하면서 채씨일문(蔡氏一門)을 이루었다. 고려 말에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되자 절개를 지켜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서 은거한 채귀하(蔡貴河)를 중조(中祖)로 한다. 본관을 인천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입향경위]

채영우(蔡瀛佑)는 자가 거경(巨敬)이며, 대구 매곡리(梅谷里)에서 1618년에 출생하여 선교랑(宣敎郞)을 지냈으며, 칠곡군 기산면 행정리[옛 인동군 기산면 퇴곡리]로 와서 우거(寓居)하니 칠곡의 입향조가 된다. 후손들이 행정리를 세거지로 삼아 살다가 한일합방 후 인동향교를 일본인들이 학교로 이용하자 채윤이 항의하다가 일본 경찰에 연행되어 감옥 생활을 하였다. 출감 후 나라 빼앗긴 세상이 싫어 인가(人家)가 없는 골짜기로 들어갔다 하여 마을 이름을 퇴곡(退谷)이라 했다.

[현황]

인구주택총조사 「성씨 및 본관 보고서」에 의하면 2000년 90여 가구 280여 명이 칠곡군 관내에 살고 있다.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이곳을 세거지로 삼아 명문가를 이루어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관련유적]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평복리소암서원(嘯巖書院)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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