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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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太守 |
영어공식명칭 | Taes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관직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태봉 |
집필자 | 이재범 |
[정의]
강원도 철원 지역에 도읍하였던 태봉의 군·현 통치를 담당한 지방 관직.
[개설]
태수(太守)라는 관직이 태봉(泰封)[901~918]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아니며, 757년(경덕왕 16) 12월에 경덕왕이 전국의 지명을 한식(漢式)으로 바꾸면서 고쳤을 때, 군의 수장을 태수라고 하였다. 궁예도 자신에게 복속하는 호족들이나 인물들에게 지방 통치를 맡기면서 태수라는 지방 관직을 수여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궁예는 수도를 송악군에서 철원경으로 옮기면서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바꾸고 중앙 관제를 정비하였다. 궁예는 중앙 관제와 함께 지방 관제도 체계적으로 운용하였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그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태수는 철원을 중심으로 전국의 통치가 행하였을 때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지방 관직의 하나이다.
[담당 직무]
철원을 중심으로 태봉의 지방 행정과 치안 등 제반 업무를 담당하였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와 『삼국사기(三國史記)』 '궁예전'에 관련 내용이 실려 있다. 궁예는 투항한 왕건을 철원태수로 임명하였다. 왕건의 아버지인 왕륭이 송악군을 들어 귀부하겠으니 아들을 송악군의 태수로 삼아 달라는 부탁을 하였던 것이다. 그 뒤 왕륭은 강원도 금성의 태수가 되었으나 1년 뒤에 사망하였다. 많지 않은 사례이지만 태봉의 관제에서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지방 관직이 태수이다.
[변천]
태봉 관제는 왕건의 고려에도 일부 흡수되었는데, 태수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철원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국가였던 태봉 관제의 원숙함을 확인할 수 있는 지방 관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