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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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노현리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이융조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노현리에 있던 구석기 유적.
[발굴 경위와 과정]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노현리에 있는 두루봉 유적은 한흥문의광산의 석회석 채취로 파괴가 진행되어 흩어져 있는 뼈 유물을 수습한 강승원[당시 『한국일보』 기자]이 제보함으로써 충북대학교 박물관과 연세대학교 박물관 공동 발굴로 제2굴을 조사하게 되었다. 제1차 발굴은 1976년 8월 7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되었다. 한흥문의광산이 20여 년 전 1960년대부터 진행한 광산 활동으로 많은 석회석을 채취하여 공장에 공급·판매하는 사이 수많은 동굴 유적들이 파괴된 데에서 찾아진 동굴 유적들이었기에 결국 끝자락에 남아 있는 유적들을 발굴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충북대학교 박물관팀은 15굴·새굴·처녀굴·흥수굴 등의 여러 동굴 유적을 찾아 10차에 걸쳐 발굴하였고, 연세대학교 박물관팀은 2차에 걸쳐 9굴을 조사하였다.
[발굴된 유물]
먼저 조사된 2굴에서 125개의 진달래꽃가루를 확인하여 ‘꽃을 사랑한 첫 사람들(the First Flower People)’이라고 불렸다. 예술을 사랑한 당시 사람들의 복원된 두루봉 그림은 중학교 『국사』 교과서의 첫 페이지에 소개되었다. 사냥물은 2굴을 중심으로 보면 사슴이 가장 많았으며, 사슴 이빨을 분석하여 보니 9월부터 10월, 2월부터 3월에 사냥 활동이 활발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사슴의 살코기는 음식으로, 가죽은 옷 대신에 걸치는 데 쓰였을 것으로 해석되고, 뼈는 연모[도구]로 만들어 썼고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다. 구석기인이 만든 예술 작품이 ‘얼굴[2굴]’과 ‘치레걸이[새굴]’에서 발굴되었다. 특히 얼굴은 연세대학교 박물관팀이 발굴한 9굴에서도 발견되어 독특한 유형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어 머리숭배신앙(skull cult)의 자료로 해석되었다.
사슴뿔로 만든 치레걸이로 새로이 찾은 굴이라는 의미의 ‘새굴’에서는 옛 코끼리의 상아[Paleoloxodon namadicus]를 발견하여, 약 50만 년 전 사람들의 코끼리의 사냥 활동을 복원·고찰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유물은 새굴에서 발굴된 옛 코끼리[학명 Paleoloxodon namadicus]의 상아뼈[길이 62㎝, 지름 7.6㎝]이다. 코끼리의 발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던져 준다. 더운 시기에 살았던 이 코끼리는 상아뼈에 남겨진 사람의 손질 자국으로 보아 자연사한 것이 아니라 사냥으로 잡혀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버드대학 교수 리처드 리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코끼리 사냥에는 청년이 적어도 16명 이상이 동원되었다고 하니, 리처드 교수의 주장을 따르면 두루봉의 여러 굴에 있던 남자들이 몰이 사냥으로 하였을 것으로 해석된다. 이 사실은 당시 두루봉 사람들의 집단 크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처녀굴에서는 완전한 동굴곰의 한 개체분이 발굴되었다. 중국과학원 김창주 박사팀은 동굴곰 개체를 연구하여 약 80%의 동굴곰 특성과 더불어 현생종 불곰의 특징도 관찰되어 불곰으로 진화하여 가는 첫 단계로 해석되며, 연대는 약 70만 년 전이라고 발표하였다. 또한 큰 쌍코뿔이의 전체 골격을 복원하여 볼 수 있는 자료가 출토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잘 전시되어 있다. 최근 한국선사문화연구원 팀이 발굴한 청주 만수리 유적의 연대가 55만년 전으로 밝혀져 두루봉과 연결되는 문화 해석으로 크게 주목되고 있다. 김창주 박사팀은 중국 주구점과 북한의 검은모루유적, 두루봉과 만수리를 문화 고리로 연결하는 중요한 해석을 제시하여 주목된다.
광산 측의 제보로 10차 발굴한 흥수굴[1982년 12월 17일~1983년 1월 29일]은 완전한 두 어린 아이[5세, 3세]의 체형이 복원될 수 있는데, 1호 아이는 키가 110㎝ 정도로 계측되었다. 다만, 2호 아이의 머리뼈는 광산 활동으로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발굴 조사에 처음부터 참여한 교수 손보기와 박희현를 중심으로 한 발굴팀의 정밀한 발굴로 완전한 Ⅲㄷ층의 홍적토 위에 바로펴묻기로 매장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이어서 고인류학 분석을 한 박선주는 1호 흥수아이의 높은 머리의 특징과 함께 현대인의 특징도 같이 갖고 있음을 보고하였으며, 배 부분에 있는 토양을 분석한 강상준·박문숙의 꽃가루 분석팀은 국화꽃가루를 집중적으로 검출하여 국화꽃이 피었던 시기에 아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위가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평가와 의의]
두루봉 동굴은 발굴 10주년을 맞이하여 1986년 아시아올림픽 개최를 축하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구석기특별전을 개최하였다. 20주년인 1996년 10월 청원 두루봉동굴 발굴 2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였고, 30주년인 2006년 11월 구석기 시대의 동굴유적과 문화를 개최하였다. 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많이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은 큰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기]
‘2018CBNU학술포럼 소로리볍씨와 흥수아이’에서 흥수아이가 구석기 시대가 아니라 현대 아이 뼈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흥수굴의 지리적 입지, 무덤의 부장품 치레걸이 문제, 충치 문제와 연대 측정 문제를 주요 근거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구석기 고고학자들 중심의 흥수굴 발굴로 구석기 시대 홍적세 층[Ⅲㄴ층]에서 흥수아이가 교란되지 아니한 온전한 채로 발굴되었다는 점, 구석기 무덤에 치레걸이 부장이 보편적이지 아니하다는 점, 유럽에서 약 2만 년 전 아이의 충치를 치료하였다는 자료로 충치가 유행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점, 아이 출토 층에서 발굴된 석기는 제작 수법 등으로 보아 약 4만 년 전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흥수아이는 청주의 구석기인에 대한 고고학 인류학적인 이해를 더욱 심화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