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1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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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世翊 |
영어음역 | Kim Sei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성별 |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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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 1634년 |
몰년 | 1698년 |
본관 | 안동(安東) |
자 | 량경(亮卿) |
출신지 |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
아버지 | 김언(金琂) |
어머니 | 이선립(李先立)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 |
아내 | 이후응(李後膺)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량경(亮卿)이다. 지금의 청원군 오창면 출신으로 아버지는 성천부사를 역임한 김언(金琂)이고, 어머니는 이선립(李先立)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할아버지는 김낙서(金洛瑞)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계현(金繼賢)이며, 부인은 이후응(李後膺)의 딸 전주이씨이다.
[활동사항]
충주 출신으로 1654년(효종 5)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음보(蔭補)로 관직에 진출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병자호란 때 적병과 싸우다가 순절하자 중림찰방(重林察訪)에 기용되어 관계에 나갔고, 사축별제(司畜別提)에 제수되어 경직으로 옮겼다.
1681년 사간원 헌납(獻納) 박태손(朴泰遜)으로부터 탐학하다는 탄핵을 받아 사판(仕版 : 관리들의 명단)을 삭거 당하였으나 다시 서용되었다. 1685년에 임금의 특지로 좌윤(左尹)에 제수되었다. 1686년 전주판관(全州判官)으로 재임시 53세의 나이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양사(兩司 : 사헌부·사간원)에 들어갔다.
1694년 사헌부 지평(持平)으로 재임시에 시관(試官)으로 영남지에 다녀와서 백성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궁방(宮房)의 침탈상을 보고하고 그 구제책을 촉구한 바 있다. 1695년 군병(軍兵)의 기강확립과 궁방의 검약한 생활 등을 건의했다.
이후 사헌부 장령, 사헌집의 등의 대간직을 거쳐 총융사(摠戎使)에 제수되었고, 여러 차례 승지에 발탁되었으며, 포도청 좌변대장(左邊大將)을 역임하기도 했다. 1697년에는 충청도관찰사에 보임되었다가 다시 승지로 복귀하였으며, 1698년 경상도관찰사로 재임시 청송 순시 중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