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9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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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成大妻李氏 |
영어음역 | Choe Seongdae Cheo Yissi |
영어의미역 | Lady Yi, Choe Seongdae's wife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재학 |
성별 | 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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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 1884년 |
몰년 | 1904년 |
본관 | 양성이씨(陽城李氏) |
아버지 | 이한경(李漢敬) |
남편 | 최성대(崔成大) |
[정의]
근대 개항기의 열녀.
[가계]
본관은 양성(陽城)이며, 아버지는 이한경(李漢敬)이고, 남편은 경주최씨 최성대(崔成大)이다. 족보상에 기재된 남편의 이름은 항렬을 사용하여 지은 최현식(崔顯植)이지만, 호적(戶籍)이나 실제 생활에서 사용되는 이름은 족보에 자(字)로 기재된 최성대이다. 후사(後嗣)가 없어 조카 최원관(崔元寬)으로 대를 잇게 하였다.
[생애]
부인은 17세에 문의(文義) 오룡리(현,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구룡리 2구 열망골)로 출가한 후 아내로서의 도리를 갖추고 모든 일을 행하였는데 21세에 갑자기 남편의 상(喪)을 당하였다.
남편을 따라 죽고자 하는 마음을 참으며 몸소 아침저녁으로 제를 올리는 일에 정성을 다하다가 남편이 죽은 1년 뒤인 1904년 7월 30일 저녁 남편의 묘소 가까이 있는 소나무에 목을 매어 죽음으로써 마침내 남편의 뒤를 따랐다. 생명보다 일부종사(一夫從事)하는 삼강(三綱)의 의(義)를 더 중히 여긴 부인의 죽음에 마을 사람들은 길에서까지 통곡을 하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이씨부인의 시가(媤家)인 경주최씨 화숙공파(和淑公派) 집안은 인조조 병자호란 때의 충효열(忠孝烈)로 부자와 부부가 정려된 바 있었기에 이씨부인의 열행(烈行)은 가문의 충정(忠貞)을 이은 것이라고 한다. 후인의 본보기가 되게 하기 위하여 비각(碑閣)을 세우려 하였으나 재력의 부족으로 건립하지 못하였다.
1919년 유림향약본소(儒林鄕約本所)에서 부인에 대한 포창완의문(襃彰完議文)을 내렸으며 『오륜행실록(五倫行實錄)』에 부인의 행적이 실렸다.
[묘소]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구룡리 남산고개(南山峴) 위에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