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7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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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後聖 |
영어음역 | Yu Hus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규근 |
성별 |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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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 미상 |
몰년 | 미상 |
본관 | 진주(晉州) |
아버지 | 유명원(柳命元) |
[정의]
조선 후기의 의관.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일숙(一叔),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다. 고려 때 상장군 진강부원군 유정의 후손이고, 청매당 유명원(柳命元)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나이 일곱 살에 어머니의 병으로 의약을 알기위하여 힘써 노력하여 마침내 의리를 스스로 터득하여 그 신기함을 세상에 알리었다. 그의 의술이 널리 알려져 사족(士族)으로 어의(御醫)가 되었다.
인조대에 천거를 통하여 내침의(內鍼醫)가 된 이후 현종조까지 왕실에서 많은 치료의 효험을 보아 서울과 지방의 많은 관직을 지냈는데, 금화사별검, 사평, 금부도사겸내승의 관직을 비롯하여 금천, 과천, 포천, 전의, 용인, 교하, 진위, 양근, 김포, 부평, 인천, 파주, 여주 등의 목민관을 지냈다.
그러나 효종 승하시의 입진(入診) 수의(首醫)로 유배되었다가 자전(慈殿)의 병증으로 인하여 서울과 가까운 직로에 연한을 정하여 이배하라고 하였다. 그 뒤 1660년 6월에 유배지에서 풀려나와 1662년에는 숭록대부로 대왕대비의 병환을 보살펴 병이 나음으로서 품계가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이르렀다.
한편, 유후성(柳後聖)이 조상의 묘소에 사초하기 위해 휴가를 청하자 임금이 말을 내주라는 명을 내렸다.. 이처럼 유후성은 인조~현종조까지 군왕들로부터 총애를 받은 유의(儒醫)이다.
[묘소]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국사리에 있으며, 묘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