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729
한자 吳著
영어음역 Oh Jeo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규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1713년연표보기
몰년 1794년연표보기
본관 보성(寶城)
근보(謹甫)
추봉(楸峰)
아버지 오도명(吳道明)

[정의]

조선 후기의 문관.

[가계]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근보(謹甫), 호는 추봉(楸峰)이다. 증호조판서(贈戶曹判書) 오도명(吳道明)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756년(영조 32)의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가 되고, 1762년 숭릉 별검, 1764년 성균관 전적을 거쳐 이듬해 예조좌랑에 오르고, 1774년에 병조정랑이 되었으며, 사헌부 장령이 되어 돈령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상소를 올렸다.

이듬해에는 통례원의 우통례와 장령을 두루 역임하고 1776년 장령으로 대망 일을 맡았다가 이조판서 이중우(李重祐)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났다. 1776년 다시 성균관 사성(司成) 등을 역임하고, 1780년(정조 4)에 군자감정(軍資監正)을 거쳐 외직(外職)인 지평을 지내다 사임하고,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갈산리에 귀향했다.

1783년 사간원의 정언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1787년에는 장령으로 있으면서 기호지방(畿湖地方)의 목면 농사가 흉년이 들자 구휼할 것을 상소하여 시행토록 하기도 하였다.

1789년에는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공조참의, 돈령도정을 역임하였으며, 1790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한성부좌윤을 거쳐 1794년에는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에 들어갔으며, 그해 82세로 죽었다.

[묘소]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갈산리에 있으며, 1985년 영정각을 복원하였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4.07 본문 내용 수정 1)지평(<기관 검색어='' 유형='옛기관'>사헌부</기관>의 정5품 벼슬) ->지평(持平) 2)통정대부(通政大夫: 정3품 당상관의 품계) ->통정대부(通政大夫) 3)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기관 검색어='' 유형='옛기관'>중추부</기관>의 정2품 벼슬)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4)기로소(耆老所)[나이가 70세 이상인 정2품 또는 종2품의 실직(實職)에 있는 문관 벼슬아치들을 우대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 ->기로소(耆老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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