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5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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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昶楠 |
영어음역 | Choe Changnam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전순동 |
성별 |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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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 1897년 |
몰년 | 1980년 |
출신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1가 |
아버지 | 최순오(崔順五) |
어머니 | 성주이씨(星州李氏) |
[정의]
청주 출신의 아동문학가·교육자
[가계]
1897년 11월에 상당구 남문로1가에서 아버지 최순오(崔順五)와 어머니 성주(星州) 이씨(李氏)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학력]
청주보통학교(현 주성초등학교)와 청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경력]
1916년에 청주군 북일면의 면서기로 공직 생활을 시작으로 2년 후에는 청주면사무소로 전근했다가, 1923년에 사립 청남학교 교사가 되어 교육계에서 헌신했다. 해방 후 청주사범학교, 청주고등학교, 청주여자고등학교, 청주공업고등학교, 세광고등학교, 청주중학교 등을 거쳐 청주주성중학교를 마지막으로 1961년 9월에 정년 퇴임하였다.
[활동사항]
청주읍교회(현 청주제일교회) 유년주일학교 교장, 청년면려회 회장, 충청면려회 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교육과 청년활동에 앞장섰다. 청남학교 교사로서 일제 강점기 어려운 시기에 한결같이 학교를 민족 교육의 장으로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특히 많은 동요와 동시를 지어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북돋아주고 민족정신을 심어 주었다.
그는 국어교사로서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보급하는데 온 정열을 쏟은 한글운동가이다.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으로 한글이 수난을 당하고 있을 때, 학생들에게 한글 철자법을 가르치고 한글 바로 쓰기를 지도했다. 야학에 참여하여 계몽운동에 힘썼고, 한글학자 최현배를 초빙하여 ‘청주한글강습회’를 열기도 하였다.
[작품]
그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朝鮮日報)』 등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글을 투고하였는데, 특히 『아희생활』이라는 월간 소년 소녀 잡지에 많이 발표했다. 『아희생활』잡지에 「풀떡」이라는 소재의 유머, 어린이의 중요성을 강조한 「꽃주일을 당하여」, 「계룡산 오누이 탑 전설」 등, 어린이와 지역문화를 소재로 한 여러 편의 글을 투고했다. 그의 작품은 직접 이름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늘봄」, 민족의 꽃 무궁화를 따서 「근당(槿堂)」, 청주의 상당산성에 연유하여 「상당성인(上黨城人)」등의 아호를 사용하여 발표했다.
[의의와 평가]
그는 당대 보기 드문 청주 지역의 교육자일 뿐만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충청북도 최초의 아동문학가이며 한글 운동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