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392
한자 沙梁部
영어음역 Saryang-b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이우태

[정의]

신라 6부의 하나로 왕경과 소경에 있었던 행정구역의 명칭.

[명칭유래]

사량부(沙梁部)는 사훼부(沙喙部) 또는 사탁부(沙𠸌部·沙𣵠部) 등으로 쓰기도 한다. 여기서 량(梁), 탁(𠸌·𣵠), 훼(喙)는 모두 도(道) 또는 독(督)으로 읽혔으며, '돌'로 발음한다. 그 뜻은 아마도 도랑을 낀 지역, 즉 들판의 뜻으로 여겨진다. 사량부는 梁部(=喙部·𠸌部)에서 분화하여 나온 것으로 사량부의 사(沙)는 새(新)의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변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32년(유리왕 9)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을 사량부로 고치고 최씨(崔氏) 성(姓)을 하사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이는 다분히 후대의 윤색일 것이다. 사량부는 원래 세력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양부(梁部)와 함께 신라의 핵심 지배계층이었으나, 나중에는 왕경(王京)안 경주의 행정구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고려에 들어와서 940년(태조 23)에 남산부(南山部)로 이름을 바꾸어 사량부의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신라의 왕경을 모방하여 지방에 설치된 소경(小京)에도 왕경과 마찬가지로 6부의 행정구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록]

소경에도 6부의 행정구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근거가 되는 기록은 청주 상당산성 남문에서 발견된 ‘사량부속장지일명(沙梁部屬長池馹銘)’와편(瓦片)과 『삼국사기(三國史記)』 「강수열전(强首列傳)」에 강수(强首)를 중원경(中原京)의 사량부 사람(沙梁人)이라고 한 것이다. 이로 보아 서원경이나 중원경에는 신라의 왕경과 동일한 사량부 등의 행정구역이 있었으며, 여기에는 왕경으로부터 이주해온 사람들이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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