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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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仁墍 |
영어음역 | Gu Ing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계의(季依)이다. 아버지는 판서를 역임한 능성부원군(綾城府院君) 구굉(具宏)이며, 어머니는 사의(司議) 조정(趙玎)의 딸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구순(具淳), 할아버지는 인조의 어머니 인헌왕후(仁獻王后)의 부친이 되는 좌찬성 구사맹(具思孟)이다.
[활동사항]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함께 공부하였으며, 인조의 어머니 인헌왕후는 고모가 된다. 광해군(光海君)이 점술인의 말을 듣고 인조의 동생인 능창군을 죽이자 친척들이 화를 두려워하여 출입하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내왕하였으며, 인조반정에 참여하였다.
인조가 즉위한 이후 아버지와 함께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이어 사헌부 감찰에 제수되었고, 군자감 판관·충훈부 도사·선공감 첨정·홍천현감·김제군수 등의 내외직을 두루 거친 후 청주목사로 부임하여 치적을 쌓았다.
1640년에 첨지중추부사로 심양관(瀋陽館)에 파견되었고, 1645년 수원부사가 되고 능풍군(綾豊君)에 봉해졌으며, 한성부좌윤·공조참판·총융사 등을 거쳐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이후 병을 핑계 삼아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에서 지냈으며, 1675년에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졌다. 인조반정에 처음부터 깊이 관여하여 반정하던 날 인조를 사저에서 직접 호종하여 즉위하게 하였다.
병자호란 이후 심양에 파견되어 울분을 참지 못하여 문밖출입을 일체 하지 않았다.
[상훈과 추모]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간공(忠簡公)이다.
[학문과 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