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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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來吉 |
영어음역 | Choe Raegi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재학 |
성별 |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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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 최명길(崔鳴吉) |
시호 | 완천군(完川君) |
추증/추서 | 영의정 |
생년 | 1583년 |
몰년 | 1649년 |
본관 | 전주(全州) |
자 | 자대(子大) |
호 | 이재(頤齋) |
출신지 | 청주 북강내이면[현 청원군 북이면] |
아버지 | 최기남(崔起南) |
아내 | 전주이씨(全州李氏)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자대(子大), 호는 이재(頤齋)이다. 청주 북강내이면(현 청원군 북이면) 출신으로 영의정 완성부원군 최명길(崔鳴吉)의 형이다. 아버지는 영흥부사(永興府使)를 지낸 최기남(崔起南)이며, 어머니는 참판 유영립(柳永立)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최수준(崔秀俊), 증조할아버지는 최업(崔嶪), 처의 아버지는 종실인 익성군(益城君) 이형령(李亨齡)이다. 최후현(崔後賢)은 그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606년 소과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으며, 1611년(광해군 3) 별시문과(別試文科)에서 을과 5위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서 전적직강(典籍直講)을 지냈다. 인조반정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이 되어 통정대부 예조참의가 되었다. 이괄의 난 때는 임금을 호종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되고 완천군(完川君)에 봉해졌다.
그후 한성부 좌우윤, 형조·공조참판을 역임하고 청주목사와 능주목사를 지냈다. 병자호란(1636) 때는 남한산성으로 왕을 호가하여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자되었고, 이어 자헌대부(資憲大夫) 도총관(都摠管)이 되었다. 1648년(인조 26)에는 경기감사로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나아가지 못했으며, 다음해에 공조판서에 제수되었다.
67세에 졸하였는데 임금이 의원을 보내 문병을 하였고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묘소]
경기도 용인시 자봉산(紫鳳山)에 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