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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602
한자 鎭州縣
영어음역 Jinju-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강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면적 406㎢
인구(남) 31,987명
인구(여) 30,331명
가구수 25,280가구

[정의]

고려 이후 청주목(淸州牧)에 속한 속현(屬縣)의 하나.

[명칭유래]

진주현(鎭州縣)은 진천(鎭川)의 옛 이름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地理)에 따르면 한주(漢州) 흑양군(黑壤郡)은 달리 황양군(黃壤郡)이라고도 하였다. 본래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으로 경덕왕(景德王)이 흑양군으로 고쳤다. 금물노군(今勿奴郡)은 달리 만노군(萬弩郡), 수지(首知), 신지(新知)라고도 하였다.

[변천]

흑양군은 고려 초에 강주(降州)라 칭하였다가 뒤에 진주(鎭州)로 고쳤다. 995년(고려 성종 14) 자사(刺史)를 두었는데, 1005년(목종 8) 이를 폐지하였다. 진주는 1018년(현종 9) 청주목(淸州牧)에 속해 2군(郡), 7현(縣) 중의 하나가 된 이후 조선 말기까지 계속되었다.

1259년(고종 46) 임연(林衍)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창의(彰義)로 승격하고 현령(縣令)을 두었고, 1269년(원종 10) 또 임연의 고향이라 하여 지의녕군사(知義寧郡事)로 높였다가 임연이 주살된 이후 낮추어 진주(鎭州)로 복구하고 감무(監務)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진주는 성종(成宗) 때부터 달리 상산(常山)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413년(태종 13) 진천(鎭川)이라 하고 현감(縣監)을 두었으며, 금천향(金泉鄕)이 속하였다. 1505년(연산군 11) 경기도에 속하게 하였다가, 중종(中宗) 초에 다시 복구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편에 따라 군(郡)으로 승격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7개 면 80개 동리로 개편되었다.

[현황]

2009년 현재 충청북도 진천군은 1읍(邑) 6면(面)의 행정구역으로 전체 406㎢의 면적이다. 세대수 25,280가구와 전체 인구 64,397명(남 34,006, 여 30,331)이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4.19 본문 내용 수정 2003년 현재 충청북도 진천군은 1읍(邑) 6면(面)의 행정구역으로 전체 406㎢의 면적이다. 세대수 21,711가구와 전체 인구 61,667명(남 31,987, 여 29,680)이다. ->2009년 현재 충청북도 진천군은 1읍(邑) 6면(面)의 행정구역으로 전체 406㎢의 면적이다. 세대수 25,280가구와 전체 인구 64,397명(남 34,006, 여 30,331)이다.
2011.04.19 메타 정보 수정 1) 메타정보 인구(남) 31,987명->남 31,987명 인구(여) 29,680명->여 30,331명 가구수 61,667가구->21,711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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