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348
한자 世光學院
영어공식명칭 Segwang Academy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미평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원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연도/일시 1947년 8월 30일연표보기
설립자 구연집

[정의]

한국기독교장로회 충북노회가 설립한 기독교계 학교법인.

[설립목적]

기독정신을 바탕으로 중등교육을 실시하며, 품성을 도야하여 교회와 사회에 유익한 중견인물을 육성하고자 설립되었다.

[설립경위]

세광학원은 1949년 9월 충청북도지역에 기독교계 중등학교를 세우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의 열망을 담고 출발하였다. 일찍이 일제강점기 하에 청남학교라는 초등학교를 운영한 바 있던 청주제일교회는 해방 이후 청남학교의 민족주의적 전통과 복음주의적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조국근대화의 역군을 양성할 인물을 육성하기 위해 학원 설립을 주도하였다.

그 결과 청주제일교회의 구연직 목사가 중심이 되어 홍청흠, 이상필 등이 교인 들이 선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충북지역의 장로교에서 이에 호응하여 1947년 학교설립기성회가 조직되었다. 이에 따라 1949년 9월 15일에는 세광중학교가, 1953년 4월 1일에는 세광고등학교가 개교하게 되었다.

[변천]

1949년 출범한 세광학원은 복음주의와 민족주의의 바탕 하에 새로운 조국 근대화에 앞장 설 인물들을 육성하기 위해 세워졌다. 특히 해방 이후 충청북도의 최초의 사립학교로서 지역 사립중등교육기관의 설립을 선도하였고, 시대적 격변기에서 맡은 바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였다.

그러나 초창기 세광학원의 진로는 순탄치 않았다. 6.25 전란으로 인한 사회 혼란과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에 따라 초창기에는 청주제일교회와 교회 내에 있던 망선루라고 하는 고려시대 목조 건축물에서 수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학교 교사의 마련이 제일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자 청주제일교회를 비롯한 충북 노회가 발 벗고 나서 1951년 청주시 소유 대성동 5번지 11,000 여 평의 대지를 불하받았고, 1954년에는 세광중학교를 신축하게 되었다.

이 때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 미군 민사처(C.A.C)의 물자를 지원받았으며 인부들의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탑동 소재 청주교도소의 죄수들을 공사 현장에 투입하여 적은 예산으로 학교를 세울 수 있었다. 세광중학교 완공 이후 1958년부터 1973년까지 세광중고등학교가 통합 운영되었다.

1959년에는 캐나다 연합선교회의 지원을 받아 세광고등학교 신축공사를 시작하였고 다음 해인 1960년 10월 17일에는 완공하여 청주제일교회 망선루에서 학교를 이전하였다. 1960년대 제 3공화국 이후 경제발전에 따른 근대화의 역군을 배출하는데 교육적 사명을 다하던 세광학원은 입시제도의 변천에 따라 탄력적인 대책으로 지역 명문사학으로 발돋움하였다.

특히 1989년 후반에는 학교이전사업에 박차를 가하여 대성동 부지를 매각하고 1989년 12월 현재의 미평동 부지로 학원을 이주하기에 이르렀다.

세광학원은 현재 세광중학교 27학급, 세광고등학교 30학급 규모의 대형 중등사립교육기관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2003년 현재 세광중학교 16,489명, 세광고등학교 16,17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활동사항]

특히 세광고등학교는 1998년 한빛학사라는 기숙사를 완공한 후 이를 기초로 하여 대입진학에 괄목할 만할 성적을 거두었다. 2000년대를 전후로 세광고등학교는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명문대학에 다수의 합격자를 배출하는 등 명문 사학으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하였다. 세광중학교 역시 진학성적과 인성지도에 탁월한 실적을 쌓고 있다.

세광학원의 상징적인 스포츠로 자리를 굳힌 야구는 세광고등학교가 1977년 화랑대기 우승을 비롯, 1980년 대붕기 우승, 1982년 황금사자기 우승, 1989년 대붕기 우승 등 뛰어난 성적을 올려 야구 명문으로서의 성가를 높이고 있다.

세광중학교 역시 1981년 전국소년체전 우승을 비롯 2000년 문화관광부 장관기 우승 등 뛰어난 성적으로 중부권의 야구 명문으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세광학원은 해방 이후 중등교육의 불모지였던 충북교육계에 사립학교 설립의 선도역할을 하였으며, 기독교 복음정신을 기초로 근대화의 역군을 배출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튼튼한 재정적 후원자가 없는 가운데서도 세광학원은 건실하고도 투명한 운영으로 다른 사학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2000년대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전진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