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0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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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斗紀 |
영어음역 | Gwon Dug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여원(汝元), 호는 소한(素閑)이다. 권결(權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부승지 권확(權鑊)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좌윤을 역임한 권우(權堣)이며, 어머니는 최유해(崔有海)의 딸이다. 진사 권후(權垕)에게 입양되었고, 부인은 이합(李柙)의 딸이다. 권두추(權斗樞)의 동생이고, 함경감사를 역임한 권익관(權益寬)의 아버지이다.
[활동사항]
1669년(현종 10)에 통덕랑(通德郞)으로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같은 해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3년부터 사간원 정언과 사헌부 지평을 거쳐 사헌부 집의·성균관 사성 등을 차례로 역임하고 난 후 외직으로 서원현감이 되었다.
이 당시 서원현이었던 것은 고을 주민 박상한(朴尙韓)이 반역죄로 처형되면서 청주목이 일시 강등(1665~1674)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현감으로 재직 중에는 재결(裁決)을 신속히 하여 관아에 체송(滯訟 : 소송이 미해결로 정체됨)이 없었다고 한다.
내직으로 들어와서 부수찬이 되어 경연에 입시(入侍)하였을 때 문의(文義)를 조리 있게 분석하여 명석한 식견을 널리 알렸다. 1683년(숙종 9) 교리가 되어 더욱 직분에 충실하는 동안, 영부사 송시열(宋時烈)이 태조(太祖)의 존호(尊號)에 정륜소의(正倫昭義)를 가상(加上)함으로써 위화도회군의 위업을 현창(顯彰)하자는 소를 올린 일이 있다.
이 때 송시열의 주장에 반대하였는데, 송시열이 자기의 주장을 끝까지 관철하자, 마침내 신병을 핑계로 벼슬에서 물러나고 교외로 나가 은거하였다.
[상훈과 추모]
최석정(崔錫鼎)이 지은 묘갈명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