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마을
-
달집태우기는 우리나라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민속놀이이다. 한때 산불 조심을 이유로 정부에서 금지하기도 했으나 끈질긴 생명력으로 오늘날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대동놀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봉산마을에서도 지금까지 달집태우기가 연행되고 있다. 본시 봉산마을에서 이루어지던 달집태우기는 ‘달에 집’이라 불렀으며, 바로 연접한 송정마을과 함께 행하던 민속놀이였다...
-
자여마을의 정월 대보름 대동놀이는 크게 당산제와 줄당기기 그리고 달집태우기 순으로 이루어진다. 달집태우기는 정월 대보름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미라고 할 수 있다. 4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자여마을은 20여 년 전까지만 하여도 봉산마을과 송정마을 그리고 단계마을과 용정마을에서 달에 집을 별도로 지었다. 그러다가 20여 년 전 자여마을 당산제가 이루어지면서 달에 집도...
-
자여마을에서 이루어지는 당산제는 봉산마을만의 동제가 아니다. 과거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중단된 동제는 송정마을과 봉산마을만이 참여하는 제의였으나 이 동제가 중단되고 1980년대 새로 시작된 당산제는 자여마을의 4개 마을, 즉 봉산마을·용정마을·송정마을·단계마을이 모여서 함께하는 제의이다. 이렇게 범위가 확대되어 시작된 당산제는 그 역사가 2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당산...
-
당산제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조금씩 변해 간다. 크게 혹은 작게라도……. 옛 모습 그대로 행해지는 당산제는 없을 것이다. 현재 자여마을에서 행해지는 당산제는 변해 가는 시대상을 잔뜩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 중에서 당산제가 행해지는 아침 당산나무 옆에 만들어지는 기부금 창구는 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옛날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낼 때는 정월 초부터 이루어지는 지신밟기를 통...
-
도시화가 상당히 이루어진 오늘날 창원시에서 가정신앙을 조사할 수 있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다. 사실 봉산마을에서도 가정신앙을 모시고 있는 가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현재 67가구 130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는 봉산마을에서 가정신앙이 확인된 가구는 단 두 가구에 불과하다. 이 가신을 모시고 있는 두 가구는 모두 주부가 7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다. 그리고 두 가구 모두 가신은 본인까...
-
봉산마을 중앙인 16번지에는 ‘통샘 터’라는 글이 새겨진 표지석이 하나 있다. 이것은 최근까지 이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진 우물자리를 표시해 둔 것이다. 통새미라 불리던 이 우물은 예부터 물이 흘러넘칠 정도로 수량이 풍부하였으며, 날이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 물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여 사람들이 이용하기 편하였으며, 맛 또한 좋아 인근 마을 사람...
-
봉산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단감 재배가 시작되기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봉산마을에서는 벼농사가 주류를 이루었다. 벼농사는 예부터 육체적인 노동을 요하였으며, 공동 작업이 많이 수반되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고된 노동 속에서 흥겨움을 찾고자 하였으며, 노동에 지친 몸을 위로하고자 노래를 불렀다. 봉산마을에서 현재 전해지고 있는 민요 중 노동요를 몇 가지 소개하...
-
황봉광 옹은 “난 아무 데도 가도 안 하고, 이 마을에 살았다고, 봉산에서 태어났는데, 16번지로 살림을 나가지고 여태까지 살고 있지.”라고 말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봉산마을의 원로이다. 1919년 1월 21일 봉산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마을을 떠나서 살아 본 적이 없는 토박이다. 황봉광 옹은 형편이 좋지 않는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
과거 봉산마을과 송정마을이 함께 지내던 동제에는 여러 가지 신비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이들 이야기의 진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들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에게 동제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는지를 알려 주는 좋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봉산마을 동제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신비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야기] 사람들은 옛날 동제를 지낼 때에는 정성이 부족...
-
봉산마을에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마을 모임이 조성되어 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모임으로는 대화상복계(大和喪服契)·정병일친계(精兵一親契)·향친상복계(鄕親喪服契)를 비롯한 상복계와 청년회·부녀회·노인회 등이 있다. 마을 모임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은 대화상복계이다. 이 모임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조성된 것으로 처음에는 17명의 주민이 모여서 시작되었다....
-
정월 대보름 아침에 자여마을 당산제와 줄당기기가 이루어지는 현장에 가보면 봉산마을과 송정마을, 단계마을, 용정마을 부녀회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여마을 부녀회장들이 모두 참여하는 가운데 제의를 준비하기에 여느 마을보다 많은 부녀회원들로 인하여 자못 복잡해 보이기도 한다. 2008년 현재 봉산마을 부녀회장인 조용옥 씨(53세) 역시 이 혼잡한 광경에...
-
동읍에서는 2008년 마을 이장직은 65세 이하의 마을 사람이 담당한다는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이 규정이 적용되면서 동읍에서는 65세 이상의 이장들이 많이 그만두고 새로운 이장이 선출되었다. 봉산마을에서도 2002년부터 마을 이장직을 담당하던 한판줄 씨가 스스로 물러나고 2008년 1월부터 황수남 씨가 이장이 되었다. 이장은 본시 선거로 선출하였으나, 오늘날에는 마을...
-
봉산마을은 새를 뜻하는 ‘봉(鳳)’과 산(山)이 만나서 이루어진 이름으로 보인다. 마을이 전단산(旃檀山)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이와 무관하지 않을 이름으로 생각된다. 봉산마을에는 마을의 여러 지명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특히 자여마을에 속한 자연마을이기 때문에 자여역과 관련한 이야기도 다수 전해지고 있다. ○굿터-봉산마을 전단산 산자락의...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송정리에 있는 돌로 만들어진 제단. 봉산마을 뒤 전단산 산자락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제단을 중심으로 앞뒤 좌우 주변을 묘지들이 둘러싸고 있다. 제단은 정확하게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형태는 뒷면에 길이 2m, 높이 110㎝, 폭 23㎝의 넓고 평평한 판석을 남북향으로 세우고, 좌측에 역시 길이 2m, 높이 95㎝, 폭 10㎝의 판석을...
-
봉산마을은 송정마을·용정마을과 연접해 있다. 골목길 하나를 두고 나누어져 있어 이 마을들과의 유대관계는 여느 마을보다 돈독할 수밖에 없다. 특히 송정마을의 경우 봉산마을과 여러 면에서 친밀감이 강하다. 이러한 친밀감은 아마도 마을의 대동제와 대동놀이, 그리고 마을 모임 등을 통해서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두 마을의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생각되는 동제와 대동놀...
-
봉산마을과 송정마을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졌으며, 골목길 옆에는 작은 도랑이 흐르고 있다. 봉산마을 뒤 전단산 자락에서 시작되는 이 도랑과 골목길은 봉산마을과 용정마을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봉산리 45번지와 43번지, 15번지를 가로지른다. 특별한 이름을 갖고 있지 못한 이 도랑과 골목길은 마을의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며 마을의 옛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
-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봉산마을의 동제는 인근 송정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 광복되기 10여 년 전에 중단된 것으로 알려진 이 제의는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흘에서 보름으로 넘어가는 자시(子時, 밤 11시에서 새벽 1시)에 이루어졌다. 이 동제는 지금의 자여마을 동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이루어졌다. 동제를 지내기 위해서 마을에서는 정월 초가 되면 가장 먼저 제의를 주관할 제관 한...
-
오늘날 자여마을 큰줄당기기에서는 외부에서 줄을 구입하여 이용하고 있으나, 과거 마을에서는 큰줄을 짚으로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리고 큰줄을 만드는 일은 농한기의 마을 사람들에게 하나의 소일거리가 되었으며, 마을 사람들의 친목 도모를 추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공동 작업이기도 하였다. 주민들은 이 큰줄을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 모여 만들었다 하여 ‘새벽줄 드린다’고 하였다. 먼저...
-
자여마을의 줄당기기는 현재 정월 대보름 단 하루만 이루어지나, 예전에는 정월 대보름에 꼭 연희하는 것이 아니며, 하루가 아닌 여러 날에 걸쳐 이루어졌다. 보통 정월 초이틀부터 시작하여 길게는 20일까지도 줄당기기가 이루어졌다. 한때는 가을 추수가 끝날 무렵부터 골목줄을 당겨, 정월달에 큰줄을 당기기까지 하였다고. 줄을 당기는 날짜는 정확히 정해진 것은 없으나, 주민들은...
-
봉산마을 줄당기기는 본시 전단산 자락에서 시작되어 봉산마을의 가장자리를 흐르고 있는 하천 변의 골목길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현재의 줄당기기는 자여마을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당산나무 앞을 지나는 큰길에서 이루어진다. 이 큰줄당기기는 그 역사가 100년이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마을의 자랑거리이자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나아가 매년 연행되면서 주민들에게 연례행사...
-
민요는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여 구전되어 오는 노래이다. 오늘날 봉산마을에서도 여전히 민요는 전승되고 있다. 봉산마을에 전해 오는 민요 중 여성들의 고된 삶을 표현한 「시집살이 노래」와 베를 짜면서 부르는 「베틀 노래」, 음식을 장만하면서 불렀다고 전해지는 「참 노래」와 「점심 노래」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베 짜는 아가씨」 「베틀 노래」라고도 부르는...
-
자여마을 당산제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시작된 마을제사이자 대동제이다. 이 제의는 해방 이전에 중단된 것으로 알려진 봉산·송정 마을의 동제와 단계·용정 마을 동제의 맥을 이은 것이다. 그런데 이 제의는 과거의 것과 다르게 변화된 모습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 그래서 여기에서는 해방 이전의 동제와 오늘날의 당산제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제의를 일컫는 말이다...
-
창원시 동읍에 단감이 재배되기 시작한 지는 근 100여 년이 다 되어간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서 시작된 단감 재배는 김해시 진영에서부터 시작되어 동읍 일대로 번졌다. 그러나 봉산마을에서의 단감 재배는 인근 지역에 비해서 늦게 시작되었다. 봉산마을 사람들은 벼농사를 주로 지었으며, 이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다. 그러나 봉산마을의 농지는 천수답(天水沓)이었...
-
농사일은 한 해를 모두 투자해서 임하는 것이다. 단시간에 파종에서 수확의 결실을 맺을 수 없으며, 오랜 시간의 기다림을 견뎌야만 수확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농사일이다. 이러한 농사일을 하다 보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여러 사람의 일손을 한꺼번에 필요로 하는 작업도 있다.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한 공동 작업을 할 때는 우리네 조상님들은 두레와 품앗이를 주로 하였다....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자여마을에서 정월 대보름에 지내는 마을 제사. 자여마을은 창원시 동읍의 봉산·송정·용정·단계 등의 마을을 아우르는 말이다. 이 4개 마을은 예부터 자여역이 있던 곳이라 하여 자여마을이라 불렀다. 자여마을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평화 그리고 그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면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지낸다. 제의에 앞서 먼저 풍물꾼들이 자여마을...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자여마을에서 정월 대보름에 지내는 마을 제사. 자여마을은 창원시 동읍의 봉산·송정·용정·단계 등의 마을을 아우르는 말이다. 이 4개 마을은 예부터 자여역이 있던 곳이라 하여 자여마을이라 불렀다. 자여마을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평화 그리고 그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면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지낸다. 제의에 앞서 먼저 풍물꾼들이 자여마을...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자여마을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하는 줄다리기. 자여마을은 창원시 동읍의 용정리·단계리·봉산리·송정리 등을 아울러서 일컫는 말이다. 과거 자여역이 있었던 곳이라 알려져 있다. 자여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이 되면 대동제를 지내며, 이 후 대동놀이로서 당산제와 윷놀이, 줄다리기, 달집태우기가 이루어진다. 자여마을 줄다리기는 큰줄다리...
-
자여마을에 있던 자여역(自如驛)은 창원도호부의 중심 역이었다. 자여역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1530년조에 처음 등장하는데, 이로 미루어 마을은 그 이전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여역은 같은 책 제32권 경상도(慶尙道)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조에 의하면 부의 동쪽 19리 지점에 있었으며, 도호부 14개 역을 중개하는 큰 역이었다고 한다...
-
자여마을에 있었다고 알려진 자여장은 현재 사라지고 없다. 이 때문에 자여장의 모습은 옛 기록과 주민들의 기억 속 이야기로만 전해지고 있다. 『창원부읍지』에 의하면 자여장은 창원도호부에서 동쪽으로 20리 거리에 있었다고 한다. 자여역이 있던 송정리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나, 봉산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자여장은 봉산마을과 송정마을의 경계선을 이루는 작은 도랑가를 따라서 형...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5일마다 열리는 사설 시장. 조선시대의 장시는 어용상(御用商)이나 시전(市廛)과 구별되는 시장으로, 별다른 시설이 없는 일정한 장소에 상인들이나 인근 주민들이 모여 서로 교역하는 곳을 말한다. 이들 장시는 대부분 고장의 치소(治所)가 있었던 읍성 주변이나 역(驛) 주변, 그 외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교통의 요지에서 열렸다. 주로 5일을 주기로 하여...
-
봉산마을의 줄당기기는 자여마을에 속한 4개 자연마을(봉산마을·송정마을·용정마을·단계마을)이 모두 참여하는 큰 행사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100년이 넘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는 자여역이 폐지된 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옛날 자여역에서 근무하던 찰방이 줄당기기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자여마을의 줄당기기는 마을과...
-
봉산마을이 속해 있는 창원시는 2008년 현재 인구 50만 명이 넘게 모여 사는 도시이다. 이 도시 속에 전형적인 농촌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봉산마을은 동읍의 자여마을 내에 포함되어 있는 자연마을이자 행정리이다. 급격한 도시의 팽창과 인구 증가를 겪은 창원시에서 시골 마을의 정취를 가득 담고 있는 봉산마을은 한번쯤 둘러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
봉산마을은 자여마을에서 나누어진 지 채 15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전까지는 송정마을·용정마을·단계마을과 함께 하나의 자여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봉산마을 입향조는 자여마을의 입향조와 같다. 자여마을에 처음 들어온 성씨는 예부터 창원에 터를 두고 형성된 창원구씨와 창원편씨로 알려져 있으며, 이 후 봉산마을로 그 생활권이 확대되어, 지금의 마을 입향조가 된...
-
경상남도 창원시 용호동에 있는 창원시 산하 도시개발 사업소. 창원시 도시개발사업소는 1974년 4월 1일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고시된 이후 55개 지구를 개발 완료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로서 성장해 온 창원시가 개발 사업의 방향을 재정립하며, 낙후된 3개 읍·면 지역을 개발하여 정주 환경을 조성하고 창원국가산업단지의 배후 공장 부지를 개발하기 위해 2005...
-
자여마을 동읍농협 앞에는 작은 골목길이 있다. 이 작은 골목길을 따라가서 송산노인정을 지나면 봉산마을에서 하나밖에 없는 구멍가게가 나타난다. 이 가게 앞을 지나 10m 가량 더 들어가면 통새미의 표지석을 볼 수 있다. 봉산리 16번지에 세워진 이 표지석은 옛날 마을의 주요 샘이었던 통새미를 기억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세워 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통새...
-
봉산마을은 최근 100여 년 사이에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다양하게 변화된 마을 모습을 살펴보는 방법으로는 기록으로 남겨진 문헌 자료를 이용하거나,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담겨진 이야기를 더듬어 끌어내는 방법 등이 있다. 그러나 봉산마을에 대한 문헌 자료는 사실 그다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마을의 옛 모습은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기...
-
전통사회의 봉산마을에서는 본격적인 농번기가 들어가기 전 3월 초가 되면 회추를 즐겼다. 회추는 농촌사회에서 매년 고된 노동 속에서 하루를 쉬어 가는 날을 의미한다. 봉산마을에서는 회추를 해치 또는 해추라고 불렀다. 마을에서 회추를 하는 날이면 집집마다 쌀을 반 되 혹은 한 되씩 갹출한다. 농촌사회였던 마을에서는 이렇게 돈보다는 곡식을 걷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간혹 쌀 반 되를 걷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