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봉
-
북모산마을 경로당 에는 거실은 물론이고 방의 벽에 빼곡히 사진들이 걸려 있다. 방에 걸린 사진들은 지난 30년간의 북모산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북모산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문학봉 옹(78세)이 향우회 사진 한 장을 가리키며, “요것도 향우회 할 때 찍은 사진이고. 그때 나는 종친회 한다고 빠졌지. 향우회를 열고 마을회관 앞에서 단체사진...
-
도시의 골목길을 누비며 이른 아침부터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하던 소리가 사라진 지도 오래 되었다. 창원 지역에서는 푸르스름한 껍질의 강조개를 ‘재첩’이라 부르는데, 1976년 10월 경상북도 안동댐이 건설되고 대구 지방의 염색공단이 입주하기 전까지 낙동강에는 재첩이 그야말로 지천이었다. 특히 보리가 누르스름하게 익어가는 5월이면 강가 물 얕은 모래사장에는 재첩이 마치 냇가의...
-
모산마을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헌과 구전을 통해 그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모산리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문헌은 『호구총수(戶口總數)』(1789년)이다. 여기에는 김해도호부 대산면에 속한 모산리(牟山里)를 확인할 수 있다. 이로 보아 모산마을은 조선 후기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전에서도 2백여 년 전에 김해김씨(金海金氏)가 최초로 입향하...
-
예나 지금이나 1,300리 낙동강은 쉼 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굽이굽이 수만 수천 년을 그렇게 흐르는 동안 낙동강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물을 주었으나 사람들은 낙동강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렸다. 세상의 모든 자연환경이 오직 사람만을 위한 것인 양 편리 위주로 무분별하게 파헤치고 건설하여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이 없을 지경인 오늘날이다. 낙동강 역시...
-
드넓은 동읍 대산면 일대의 들판은 예부터 낙동강이 적셔 주는 천혜의 곡창지대이다. 사방팔방 20~30리 안에는 산이 없는 질펀한 습지를 비옥한 농경지로 가꾸어 왔던 조상들의 땀과 숨결이 배어 있는 곳으로, 낙동강 물이 구석구석을 적셔 주었다. 그랬기에 전국 어느 지방보다도 농경문화가 발달했던 곳이어서 오늘날 선진 복지농촌이 된 게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낙동강 물은 인체의...
-
한국농촌공사 창원지사의 옛 명칭은 창원농지개량조합이다. 더 오래 전 1970년대 이전에는 창원수리조합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산업개발조합으로 불렸다. 1960~1970년대에는 식량이 절대적으로 모자라 배를 굶주린 사람들이 많았기에 국가 중요 국정지표를 ‘증산, 수출, 건설’이라 했다. 그 시절을 일컬어 이른바 ‘보릿고개 시절’이라고도 했는데, 먹고살기가 힘든 시절인지라 당...
-
정차종 할아버지는 올해로 바지게를 만든 지 20여 년이 넘는다. 한 해에 20여 개가 넘는 바지게를 만들었다고 하니 지금까지 만든 바지게의 수만 해도 500여 개가 넘을 것이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겠거니라고 생각했는데 우연치 않게 아들이 운영하는 편의점을 방문하면서, 손님이 들고 온 바지게를 보고 바지게 만들기에 흠뻑 빠지게 되었단다. 정차종 할아버지의 삶은 그때부터...
-
북모산마을 노인회장 문학봉(78세) 옹과 인터뷰를 하던 중, 문학봉 옹이 마을에 손재주가 많은 분이 있는데 그분의 생애를 담아 봄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얼마 후 문학봉 옹은 정차종 할아버지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경로당으로 나오라고 했다. 정차종 할아버지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정차종 할아버지는 모산마을을 넘어 대산면에서도 ‘바지게 만드는...
-
씁쓰레한 내음이 풍기는 삼밭에 들어가면 햇볕이 쨍쨍한 여름 한낮에도 캄캄해서 하늘이 보이질 않았고 시원해서 좋았다. 또한 키가 2m나 넘는 삼의 줄기가 가지런히 서 있는 사이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술래잡기를 하기도 좋아 1960년대의 아이들은 여름날이면 강변 삼밭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강변을 따라 폭 1㎞, 길이 4㎞ 정도로 형성된 고수부지인 모래밭에는 여름철이면 군데군데 키가 큰...
-
신작로에서 북부양수장 방면으로 지방도 60호선을 따라 100m 정도 가면 2층의 현대식 건물이 나타나는데 그곳이 바로 정차종 할아버지(81세)의 집이다. 집의 좌측에는 벽면을 붙여 만든 좁은 작업실이, 우측에는 낡은 창고 2동이 세워져 있다. 정차종 할아버지는 먼저 낡은 창고로 안내하였다. 천장을 보니 나무를 조립해 슬레이트를 얹힌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나무를...
-
낙동강 제방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모산마을은 장마철이 되면 강물이 범람하여 몇 차례 물난리를 겪었다. 마을 최대의 물난리는 1934년 7월로, 마을 사람들은 그때를 ‘갑술년 물난리’라 부른다. 엄청난 양의 장맛비가 쏟아져 강물이 마을을 덮쳤고, 마을 사람들은 만당[일명 만등]에 올라가 간신히 몸만 피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1963년과 1965년, 1969년 폭우가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