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 김명윤(金命胤)의 삶은 여러 일화와 함께 적지 않은 유산들을 유·무형으로 전해 주고 있다. 그는 19세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26세 때 일본통신부사의 종사관으로 추천되어 일본을 다녀오는 기회를 얻었다. 1590년의 일이다. 이듬 해 2월 돌아와서는 상세한 현지 조사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바로 『동사일록(東槎日錄)』으로 알려진 책이다. 『동사일록』은 당시 일본의 풍토...
경상남도 창원시에 신도비가 있는 명나라의 장군. 사유(史儒)[?~1592]는 명나라의 요동성 유격대장으로서 문무를 겸비한 무장이었다. 일찍부터 비적들을 물리치는 등 전공을 세웠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선을 원조하러 왔다가 평양성에서 전사했다. 『선조실록』과 『동원제장록(東援諸將錄)』에 의하면 중국 명나라의 요동성 유격대장이던 사유는 임진왜란이 일어...
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민령(安民嶺)에서 의병장 최강이 일본군을 격퇴한 전투. 안민령(安民嶺)은 창원시 안민동과 진해구의 경화동·석동을 연결하는 고개로 안민 고개라고도 부른다. 안민 고개는 진해와 창원을 잇는 지름길이자 해안과 내륙을 잇는 육로상의 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즉 웅천현에서 창원부 읍성에 이르는 육로상의 지름길이었다. 이곳에서...
조선 중기 창원부사를 지낸 문신. 윤우신은 서울에서 태어나 1561년(명종 16) 문과에 급제하였다. 1573년(선조 6) 안악군수에 이어 함흥판관이 되었다. 1581년(선조 14) 창원부사로 있다가 파직되었다. 이 후 영위사(迎慰使), 안주목사, 나주목사를 거쳤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지중추부사로 급고사(急告使)가 되었으며, 같은 해 호조참판이 되었다. 이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