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이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731
한자 全州 李氏
영어공식명칭 Jeonju Lee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585년 - 이경여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657년 - 이경여 사망
본관 전주 - 전라북도 전주시
입향지 규암면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규암면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성씨 시조 이한(李翰)

[정의]

이한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연원]

전주 이씨(全州 李氏)의 시조는 신라 때 사공을 지낸 이한(李翰)[?~?]이다. 이한의 22세손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李成桂)[1335~1408]이며, 이후 전주 이씨는 왕성(王姓)이 되었다. 이성계 이후 전주 이씨는 진안대군파(鎭安大君파), 익안대군파(益安大君派)를 비롯하여 밀성군파(密城君派), 덕천군파(德泉君派) 등 120여 계파로 분파되었다.

부여의 대표적인 사족을 언급할 때 흔히들 ‘황동서리(黃東西李)’라고 하였는데, 이는 부여 동쪽의 창원 황씨(昌原 黃氏)와 서쪽의 전주 이씨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입향 경위]

전주 이씨는 조선 중기 이후 부여 지역에 입향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전주 이씨 의안대군파가 초촌 지역에 입향하였다고 한다. 또한 인조대에 이경여(李敬輿)[1585~1657]가 우거하면서 밀성군파(密城君派)도 세거하였다.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경여는 처가인 해평 윤씨(海平 尹氏) 문중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지금의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 일대에 우거하였다. 처가로부터 받은 재산은 둘째 아들 이민적(李敏迪)[1625~1673]에게 주어 후손들이 세거하는 경제적 배경이 되었다. 이경여백마강 서쪽 강가에 원우당(遠憂堂)을 짓고 생활하면서 스스로 호를 ‘백강(白江)’이라 하였다. 원우당은 백강정(白江亭)이라고도 한다. 이경여의 아들인 이민적은 부여의 유력 성씨인 창원 황씨 황일호(黃一皓)[1588~1641]의 딸과 혼인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대를 이어 계속 부여에 살았으며, 이경여의 손자인 이사명(李師命)[1647~1689]과 이이명(李頤命)[1658~1722]의 후손들은 부여의 대표적인 사족 가문으로 정착하였다.

[현황]

전주 이씨부여읍 자왕리, 규암면 반산리·신성리·신리 등을 비롯하여 은산면 경둔리·합수리, 외산면 비암리·지선리, 석성면 증산리, 양화면 송정리 등지에 세거하였다. 1987년에 간행된 『부여군지』에 따르면 부여군에 거주하는 전주 이씨는 총 2,159이며, 100호 이상 거주지로는 부여읍 464호, 규암면 336호, 은산면 172호, 임천면 150호, 석성면 125호, 초촌면 199호 등으로 파악되었다.

[관련 유적]

부여의 전주 이씨 관련 유적으로는 초촌면 추양리에 태조 이성계의 이복동생 의안군(義安君) 이화(李和)의 4남인 영천군(寧川君) 이담(李湛)을 비롯한 후손들의 묘소가 있다. 묘역에 있는 신도비와 문·무인석 등 각종 석물들은 ‘초촌 영천군파 세장지 석물 일괄’이라는 명칭으로 2002년 6월 10일 향토문화유산 제61호로 지정되어 보호 중이다.

규암면 진변리이경여를 배향한 부산서원(浮山書院), 이사명의 부인 임천 조씨(林川 趙氏)와 며느리 연일 정씨(延日 鄭氏)의 열녀 정려가 있다. 정려 안에는 정려중수기(旌閭重修記)와 영모추판기(永慕追板記)와 명정(銘旌) 등이 있다. 백마강가 암벽에는 이경여의 상소에 대해 효종이 내린 비답인 ‘지통재심(至痛在心) 일모도원(日暮途遠)’을 새긴 각서석(刻書石)과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운 대재각(大哉閣)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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