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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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활약한 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 출신의 군인. 보령시 주교면 주교리에 세거하는 진주 강씨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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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필달을 시조로 하고 최광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시의 이거 성씨. 강릉 최씨는 조선 시대에 성리학뿐만 아니라 시문·시화·음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주를 가지고 있었던 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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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여진족을 소탕해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역모에 연루되었다는 무고로 사형을 당해 보령시에 묻힌 명장. 강순(康純)[1390~1468]은 조선 전기의 명장으로 일찍이 북방 방어 능력을 인정받아 세조(世祖)[재위: 1455~1468]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고 여세를 몰아 북방의 여진족을 토벌하였다. 우의정으로 있을 때에 보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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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하고 김성우(金成雨)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광산 김씨(光山 金氏)는 광주 김씨(光州 金氏)로 불리기도 하였지만, 이후 광산 김씨로 통일되었다. 광산은 오늘날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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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도 보령 남포현감으로 부임하여 신안사 창건을 발의한 문인 관료. 권상신[1759~1824]은 충청도 공주 출신으로 문과 장원 급제 후 관직 생활을 하였는데, 1796년(정조 20) 보령 남포현감(藍浦縣監)으로 부임하여 주자(朱子)[1130~1200]를 제향(祭享)하는 영당(影堂)의 건립을 발의하여 신안사(新安祠)가 건립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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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지역에서 후진 양성에 공을 세운 조선 전기의 문신. 김맹권(金孟權)[?~?]은 집현전 학사로 세종(世宗)[재위: 1418~1450]의 신임을 받았으나 수양대군(首陽大君) 세조(世祖)[재위 1455~1468]가 왕위를 찬탈하자 충청도 보령으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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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해군 때 충청도 보령 지역으로 낙향하여 후진을 양성한 문신. 김태국(金泰國)[1566~1624]은 광해군 12년에 관직을 버리고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고향으로 낙향하여 후진을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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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단종이 폐위되자 충청도 보령의 남포현에 터를 잡고 불사이군의 지조를 지킨 문신. 김훈(金勛)[?~?]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남포현감을 지냈으며, 단종이 폐위되자 벼슬을 버린 채 남포현에 들어와서 다시는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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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도 보령 지역에서 국가의 정책적 필요에 따라서 말이나 소 등을 길렀던 곳. 과거에 말과 소는 운반·이동·동력의 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국가는 정책적으로 필요한 말이나 소 등을 기르기 위하여 충청도 보령 지역을 비롯해 전국에 목장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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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도 보령 지역 출신의 성리학자. 백이정(白頤正)[1247~1323]은 고려 후기의 학자로 안향(安珦)[1243~1306]으로부터 성리학을 배웠다. 그 후 10여 년간 중국 연경에 머물며 성리학을 연구하고, 고려에 돌아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백이정의 학통은 이제현(李齊賢)[1287~1367], 이색(李穡)[1328~1396], 권근(權近)[1352~1409], 변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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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삼별초가 여원연합군과 항쟁하는 과정에서 충청도 보령 지역에 있는 고란도를 공격한 사건. 삼별초(三別抄)는 1270년 6월 개경으로의 환도를 거부하고 진도와 탐라도로 근거지를 옮기며 여원연합군과 3년간의 항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삼별초가 1272년 9월 고란도(孤蘭島)에 침입하여 전함 6척을 불태우고 배를 만드는 장인을 죽였으며, 조선관(造船官)이었던 홍주부사 이행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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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광주 안씨 입향조인 조선 전기 문신. 안윤손(安潤孫)[1450~1520]은 전라우도(全羅右道)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 형조참의(刑曹參議),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등을 지낸 청백리이다. 아들 안자문(安子文)이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 보령으로 낙향하여 광주 안씨의 입향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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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충청도 보령 지역의 일본 해적 침입 사건. 고려 말에 왜구의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보령 지역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보령 지역의 왜구 침입은 1380년(우왕 6) 남포현 침입과 1381년(우왕 7) 11월 보령현 침입을 들 수 있다. 1388년(우왕 14)에는 왜적 1,000여 명이 옥주(沃州)와 보령(保寧) 등의 현(縣)을 함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왜구의 침략으로 보령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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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 때 공을 세웠으며 후손들이 보령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윤자운(尹子雲)[1416~1478]은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났을 때 공을 세우고, 세조(世祖)[재위: 1455~1468]의 총애를 받아 영의정까지 오른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후손들이 충청남도 보령에 입향하여 번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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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충청도 보령 지역 연해에 나타난 우리 배와 모습이 다른 외국 선박의 출몰. 이양선(異樣船)은 조선 시대 연해에 나타난 서양의 배들을 말한다. 서양의 배의 모양이 우리 배의 모습과 다르다는 뜻으로 ‘이양선’이라고 하였으며, 이단선(異團船)·황당선(荒唐船)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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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조 대 청백리에 녹훈된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문신. 이태중(李台重)[1694~1756]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강직한 성품으로 외직에 있을 때 공평무사한 목민관으로 활동하였으나, 영조(英祖)[재위: 1724~1776]의 심기를 건드려 귀양을 갔다. 벼슬에서 물러나 있을 때에는 고향인 보령[현 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신죽리 농현]에서 강학하였다. 후에 그 성품을 인정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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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보령, 홍성, 광천, 청양, 대흥, 결성 등 6개 군에 속한 보부상단이 상권을 관할하고 구호 역할을 하던 장소. 조선 후기 전국에는 1,000여 개의 5일장이 열려, 필요한 물건을 사고 팔았다. 5일장을 찾아다니며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부상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조선 시대 지방 시장의 발달을 촉진시킨 사람들이다. 보부상들은 상호간의 협력 필요성 때문에 ‘상무사(商務社)’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