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말기 정임교가 경파대의 내력과 자신을 최치원에 빗대에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매촌(梅村) 정임교(丁壬敎)는 나주정씨(羅州丁氏)로 자는 남서(南瑞)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있는 임경대(臨鏡臺)에서 수백 보 아래에 있는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낙동강 변에 있던 경파대(鏡波臺)는, 임경대에서 노닐던 정임교가 우연히 발견하고 이름을 붙인 곳이다. 정임교가 임...
-
조선 말기 이기주가 남유대의 모습과 자신의 삶에 대하여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남유대(南遊臺)는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석산리 금정산(金井山) 아래에 있다. 저자 회남(淮南) 이기주(李琪柱)는 고려 후기 문열공(文烈公) 이조년(李兆年)의 후손으로, 선조의 교훈을 이어받아 임천(林泉)에 은거하며 효도와 우애가 독실하였다고 한다. 남유대는 이기주가 만년에 휴식하고자 지은 누각...
-
조선 후기 안효필이 두연대의 모습과 인간 삶의 무상함에 대하여 읊은 한시. 두연대(斗淵臺)는 양산시 서쪽 어곡(魚谷) 안에 있었는데, 경치가 빼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두연대는 무너지고 터만 남아 있다. 작자인 일야당(一也堂) 안효필(安孝弼)[1855~?]은 1882년(고종 19)에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 인물이다. 1~2구는 달도 찾아들기 어려울...
-
조선시대 유준영이 반산대 주위 경관과 유희의 감회를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반산대(盤汕臺)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 탑산(塔山) 아래에 있다. 반산대는 묵경(墨耕) 유준영(柳準永)과 동생인 유복영(柳福永), 유해영(柳海永) 등 3인이 노닐던 곳으로, 바위에 새기기를 “대가 없으면 반(盤)이 없고 반이 없으면 이름이 없다. 대와 반이 서로 의지하니 주로 그 뜻을 취...
-
조선시대 김재형이 성정 도야의 공간으로 복룡대를 이야기하면서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복룡대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구소석에 있으며, 삼옥당(三玉堂) 김재형(金在衡)과 김재언(金在彦) 형제가 노닐던 곳이다. 복룡대의 주인은 정인휘(鄭寅諱)로, 대를 조성한 후 자신의 초명인 정인석(鄭寅錫)을 음각하였다. 『양산향교지』 등에는 복룡대의 주인이 삼옥당(三玉堂) 형제로 잘못 소...
-
조선 후기 이흡이 삼칠루 주위의 자연 경관을 감상하며 읊은 오언고시의 한시. 삼칠루(三七樓)는 조선 후기 양산 지역 남쪽 감동창(甘同倉)에 있던 누각이다. 삼칠루는 양산군수 권성규(權聖規)가 1693년(숙종 19)에 건립하였는데, 건립 당시 누각 앞에 삼차수(三叉水)와 칠점산(七點山)이 인접하여 삼칠루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작자인 이흡은 1733년(영조 9) 한 해 동...
-
조선 전기 김극기 등이 쌍벽루의 절경을 감상하며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쌍벽루(雙碧樓)는 양산 관아 서쪽에 있었으며, 누각 아래 푸른 물과 푸른 대나무가 서로 비추어줌으로 쌍벽루라 하였다고 한다. 쌍벽루는 고려시대부터 유명한 곳이어서 많은 시인들이 시를 남겼다. 특히 김극기(金克己)[1379~1463]와 명(明)나라 사람 장청(張淸)의 시 등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
-
고려 후기 정포가 유배 당시 양주객사에서 이별의 감회를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동문선(東文選)』에 「제양주객사벽(題梁州客舍壁)」이라는 제목으로 전한다. 정포(鄭誧)[1309~1345]는 원(元)나라로 망명하려 한다는 참언으로 인해 한때 울주(蔚州)[지금의 울산광역시]로 유배를 당하였는데, 유배 시절 지어진 작품으로 여겨진다. 「양주객사 제영」인 「제양주객사벽...
-
조선시대 양재두가 어룡대를 건조한 후 주변 경관과 자신의 유유자적한 삶에 대하여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어룡대(魚龍臺)는 벽파(碧波) 양재두(梁在斗)가 건조한 대(臺)로,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 영축산 기슭에 위치한다. 양재두가 어룡대에 새기기를 “사방의 산이 구름과 같으니/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는구나(四山如雲 魚變成龍)”라고 하였다. 칠언율시의 한시이며, 한...
-
조선 후기 오명환이 연구대를 건립하고 명칭 유래에 관하여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연구대(蓮龜臺)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 석장산(石庄山) 아래에 있다. 조선 후기에 죽재(竹齋) 오명환(吳明煥)이 건립하였으며, 병풍 같은 바위와 개석(介石)이 있어서 올라가 소영(嘯詠)하기에 좋다고 한다. 「연구대 제영(蓮龜臺 題詠)」은 연구대라는 이름이 유래하게 된 내력...
-
조선시대 박경홍이 용대의 절경을 감상하며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용대(龍臺)는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있으며, 그 골짜기는 깊고 냇물이 길어 용이 놀던 곳이라 전한다. 용대에는 용이 비스듬히 서린 형상이 있으며 폭포도 흐른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절경을 만끽하는 정회를 읊고 있다. 용대가 있는 곳은 초목이 늦게까지 시들지 않을 만큼 깊은 골짜기라, 물고기와 새우...
-
조선 전기 오시유가 우촌정사에서 삶의 자세에 관하여 읊은 팔언고시의 한시. 우촌정사(牛村精舍)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소로(小魯)마을에 있었으며, 우촌(牛村) 정수(鄭脩)가 지은 정사라고 전해진다. 오시유(吳始有)가 우촌정사에서 은거하는 삶의 유유자적함을 노래하였다. 은거하는 삶 속에 고단함이 있더라도 옛 성현의 가르침을 이어 백석(白石) 같은 깨끗함...
-
조선시대에 박천수가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원효대(元曉臺)에 제영한 한시. 원효대는 원효암(元曉庵)에 있는데, 원효대사[617~686]가 득도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원효대제영」은 박천수(朴天銖)가 오랫동안 인적이 끊어진 듯 칡넝쿨이 엉킨 길을 따라 원효대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심정을 읊고 있다. "푸른 산 첩첩하고 물소리는 잔잔한데/ 칡넝쿨 여기저기에 엉켜 당겨잡고...
-
조선시대 김영봉이 율리정사의 모습과 기풍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율리정사(栗里精舍)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으며, 1672년(현종 13)에 죽산(竹山) 안희청(安希請)이 안효필(安孝弼)의 생가에 학문 전념을 위해 지은 정사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현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율리정사의 기풍을 매일 비추는 밝은 달빛과 끝없이 흐르는 차디찬 냇가에 빗대고 있다....
-
남북국시대 최치원이 임경대의 풍광과 자신의 심경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최치원(崔致遠)[857~?]의 문집인 『고운집(孤雲集)』권1과 우리나라 역대 시문선집인 『동문선(東文選)』권19에 「황산강 임경대(黃山江 臨鏡臺)」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임경대(臨鏡臺)는 황산강(黃山江: 낙동강의 옛 이름)가에 있으며, 최치원이 노닐면서 「임경대 제영」을 지었다고 하여 최공대(崔...
-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명산·대천 등의 자연물이나 사찰·그림·누각 등의 인공물에 시구를 적어 넣은 것. 사람들은 절경의 자연물이나 역사적 혹은 문화적 함의가 있는 인공물 등에 제영하여 자연물에 인간적인 색채를 더하고 인공물에 의미를 배가하여 대상물이 지닌 본래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유명한 장소는 유명한 시인을 불러들이고, 또 그로 인해 그 장소가 더욱 유명해지고 더...
-
조선 중기 김이만이 양산향교 풍영루에서의 감흥과 학문에 정진하기를 청하며 읊은 오언율시의 한시. 풍영루는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양산향교의 정문으로 김이만(金履萬)[1683~1758]이 양산군수로 있으면서 임진왜란에 소실되었던 것을 1684년(숙종 10)에 낙성하였다고 한다. 또한, 기존에 전해오던 것을 1878년(고종 15)에 양산군수 이민하(李玟河)가 중수하였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