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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요도구(窯道具). 15세기에 제작된 요도구로 도침, 갑발, 태토비짐이다. 대접·접시·종지·병·항아리 등의 생활 용기와 제기로 쓰였던 보·향로 등의 특수 용기를 만들기 위하여 제작되었다. 도침은 원통형을 이루며 바닥은 한쪽이 사선으로 되어 있다. 갑발들은 내화토로 만들어졌다. 주로 공납용으로 납품하였던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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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양산 지역에서 제작된 회청색 경질 고배. 가촌리 유적지에서는 세 종류의 고배가 출토되었다. 첫째, 각부편으로서 배신부가 결실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밝은 황갈색을 띠고, 각부는 2단으로 되어 있으며, 하단부에만 세 개의 장방형 투창이 배치되어 있다. 잔고 4㎝, 각부 저경 6.5㎝, 두께 0.4㎝이다. 둘째, 각부편으로서 대부분 파손된 상태로 출토된 것이다. 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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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경상남도 양산에서 활약했다고 추정되는 장군. 거도의 활약상은 『삼국사기』 거도열전에 잘 나타나 있으나, 가계와 성씨는 전하지 않는다.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때에 벼슬하여 간(干)이 되었다. 그때,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居柒山國)이 국경의 이웃에 있어서 자못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었는데, 거도가 변경의 지방관이 되어 그 곳을 병합할 생각을 품었다. 매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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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의 경상남도 양산의 역사. 양산 지역은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삼한시대와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야의 영향을 받다가 5세기 이후 신라에 편입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삽량(歃良)으로 불리다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양주로 개칭되었다. 양산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그 시기에 대해서 확실하게 단언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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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김무력의 이름 표기는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구형왕의 둘째아들 무력(茂力)으로 되어 있다. 구형왕의 셋째아들 무력(武力)으로 표기된 『삼국사기』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삼국유사』 김유신조에는 호력(虎力)으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고려 혜종의 이름인 무(武) 자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단양적성비에는 ‘사탁부(沙啄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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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삼국사기』김유신전과는 달리『삼국유사』가락국기조에 인용된 문무왕의 제서(制書)에는 김서현이 구형왕의 손자인 솔우공(率友公)의 아들 서운 잡간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김유신비」에는 김소연(金逍衍)으로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본관은 김해(金海). 할아버지는 금관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며, 아버지는 김무력이다. 부인은 신라 왕족인 숙흘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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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남북국시대 양주·강주·한주 태수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김유신의 현손이고 김윤중의 손자이다. 김암은 어릴 때부터 총명, 민첩하고 술법 배우기를 좋아하였다. 젊어서는 이찬(伊飡)이 되어 당에 들어가 숙위하였다고 하는데, 틈을 내어 음양가(陰陽家)의 스승을 찾아가서 술법(術法)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는 매우 총명했기 때문에 하나를 들으면 세 가지를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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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고종 40) 명례궁에서 작성하여 경상남도 양산군청에 발급한 완문(完文). 완문은 주로 관청에서 향교·서원·단체 또는 개인에게 발급한 것이다. 완문의 기능은 어떠한 사실을 확인해 주거나, 권리와 특권을 인정해 주는 것으로 일종의 인준(認准) 문서이다. 이 「명례궁완문」은 1903년에 명례궁에서 작성한 완문으로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말기 경상남도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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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삼국시대 신라의 악인(樂人). 박문량은 세칭 백결선생(百結先生)이라고 하는데, 방아타령을 지어 그 아내를 위로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야사(野史)와 『영해박씨대동보(寧海朴氏大同譜)』에 따르면 ‘박문량은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아들이고, 이름이 효원(孝元)이며, 호는 백결(百結)이다.’라고 전한다. 또한 ‘신라 실성왕 13년에 출생하여 5세 때 누님에 의하여 성장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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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제작된 순금 귀걸이. 은제 허리띠 아래에서 출토된 것은 총 길이 9.4㎝로, 고리는 가운데가 뚫린 통 모양을 둥글게 구부린 형태이다. 양끝이 맞붙는 곳에 틈이 있고 표면에는 거북등 무늬를 장식하였다. 고리의 지름은 3.1㎝이다. 중간 장식은 가는 고리로 표면에 거북등 무늬가 장식되었다. 지름 3.1㎝, 단면 지름 0.4㎝이다. 드리개[垂下飾]는 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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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제작된 한 쌍의 금제 새다리. 몸통은 부식되어 없어졌고, 발가락은 네 개로 끝이 뾰족하고 벌어져 있다. 길이 2.8㎝, 발가락 길이 0.6㎝, 몸통 접속부 지름 1.0㎝이다. 몸통과 밀접한 부분을 납작한 판상(板狀)으로 만든 뒤 못 구멍 세 개를 조화 있게 배치하였다. 작지만 구부러진 다리와 쫙 벌어진 발가락이 곧 날아갈 듯하다. 북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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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제작된 금제 팔찌. 순금으로 단조(鍛造)한 원형의 팔찌로서 전체 직경 7.6㎝, 윤선 지름 0.5㎝이다. 사각형의 금사(金絲)로 바깥 부분에 원형 돌기상(突起狀)의 타출문(打出文)을 새긴 뒤 이를 둥글게 구부려 양쪽 끝을 이었다. 북정동 금조총 출토 금제 팔찌는 북정동 부부총에서 같은 형식의 부인용 팔찌가 출토된 적이 있어 피장자가 여성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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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제작된 은제 허리띠. 띠고리[鉸具], 띠꾸미개[銙板], 드리개[垂飾], 띠끝꾸미개[帶先金具]로 구성되어 있다. 띠고리는 주연부(周緣部)의 선단이 원형에 가깝고, 기부에 T자형의 조(釣)를 부착하여 고정구로 사용하고 있다. 방형 띠꾸미개는 삼엽문(三葉文)이 투조(透彫)되어 있고, 하부에 볼록한 모양의 물고기를 심엽형의 수식과 연결시켜 놓았다. 드리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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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제작된 고리 자루 칼. 자루 병부(柄部)은 단면 장방형의 철심에 목질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위를 은판(銀板)으로 한 번 감싼 뒤, 다시 침선 무늬[針線文]가 새겨진 은대(銀帶)를 자루 머리[柄頭] 부분에 한 번 더 감았다. 자루 머리 부분은 삼루환 철심(三累環鐵心)에 은판을 씌운 형태인데, 은판은 산화되어 균열이 심하다. 삼루환두대도는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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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있었다는 진한 12국 중의 하나.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 나와 있는 소국 중의 하나로 지금의 양산 지역으로 비정하기도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없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록된 변·진한(弁·辰韓) 24소국 가운데 확실하게 양산지역으로 비정되는 곳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까닭으로 일부 학자들은 지금의 양산지역이 변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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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지명으로 신라 9주(九州) 가운데 하나. 삼국통일 직후 신라는 지방 행정 구역인 9주를 설치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로 상주(上州)·하주(下州)의 땅을 떼어내 양산 지역을 중심으로 삽량주를 설치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卷) 34 잡지(雜志) 3 지리(地理) 1 양주조(良州條)의 설치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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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제작된 회청색 토기. 현재 파손이 매우 심한 상태로, 태토(胎土)는 사립(沙笠)이 섞인 점토를 사용하였고, 기벽(器壁)은 얇으며 소성(燒成)은 양호하다. 성형(成形)은 권상법(捲上法)과 윤적법(輪積法)을 병행하였는데, 기벽 안쪽에는 당시에 생긴 토대(土帶) 자국이 있고, 그 위에는 최후 조정(調整) 때 생긴 회전 자국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 표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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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웅상읍 명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가마 터. 양산 명곡리 도요지는 대운산 기슭의 화양골, 솔밭골, 시명골에 산재한 가마 터이다. 화양골에서는 접시, 사발 등의 철화백자(鐵畵白磁)·흑유류(黑釉類)가, 솔밭골에서는 분청사기(粉靑沙器)·회백자(灰白磁)가 주로 출토되었다. 시명골에서는 분청사기·흑유류·백자가 각각 조사되었다고 전하지만, 현재는 백자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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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있는 조선 중기 가마 터. 양산 법기리 요지에는 창기마을 뒤편 산 중턱에서 기슭에 이르기까지 여럿의 요지가 남아 있었으나, 근래 대부분 논과 밭으로 개간되었다. 창기마을 뒤편 산 위의 유적에서 채집된 것은 주로 백자편이다. 그 중에는 낮은 온도에서 구워 표면이 녹청자(綠靑磁) 같은 것이 섞여 있다. 처음부터 백자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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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 터. 양산 가산리 도요지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양산군조」에 보이는 관요(官窯)로 추정되며, 대접·접시류가 주를 이루지만 제기류·호(壺)·병(甁)·매병(梅甁) 등도 수습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약식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연이은 도굴로 인하여 많이 훼손되었다. 하지만 최근 상태가 양호한 퇴적층과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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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김해김씨 양산문중의 취산재에 있는 조선 후기 민화풍(民畵風)의 그림. 종이에 채색하여 그린 민화풍의 무인 부부의 그림이다. 병풍, 반짇고리, 경대 등을 배경으로 부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부인의 경우 쪽진 머리를 하고 있으며, 가슴이 드러날 정도로 짧은 저고리를 입고 있다. 저고리와 치마 사이의 겨드랑이 밑을 가리개용 허리띠로 조여 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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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고려시대 가마 터. 원동면 화제리 화제초등학교 교사 뒤쪽 낮은 구릉상의 민묘가 있는 지역 일대가 양산 화제리 도요지이다. 양산 화제리 도요지에서는 녹청자 가마와 도편(陶片)이 확인되었다. 채집된 도편은 모래 등 잡물이 섞인 거친 태토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또한 철분 함량에 따라 녹색, 갈색, 회색 등이 발색되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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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출토된 흙을 빚어 불에 구워 만든 용기. 우리나라의 경우 토기는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를 거쳐 삼국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신석기시대는 빗살무늬 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덧띠무늬 토기·붉은 간토기·가지무늬 토기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민무늬 토기·붉은 간토기·검은 간토기 등이 있다. 철기시대에는 민무늬 토기와 타날문 토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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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웅상읍 평산리(현 평산동) 환호 유적에서 출토된 삼한시대의 자루머리에 고리가 달린 작은 칼. 철제로 된 소환두도자로 길이는 46㎝의 중형이다. 삼한시대 양산 지역은 남쪽으로 독로국(지금의 부산광역시 동래)과 인접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에 의하면, 독로국은 왜와 경계를 접하고 있었으며, 변한은 왜와 철을 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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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있었다고 하는 진한 12국 중의 하나.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 한조에 나와 있는 소국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나타나는 변진한(弁辰韓) 24소국 가운데 양산 지역으로 비정되는 곳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일부 학자들의 경우 변진 24국 중에 불사국과 호로국에 속하였다고 보기도 하고, 독로국으로 비정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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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朴堤上)은 4세기 말 5세기 초반에 활동한 신라 사람으로, 신라의 변경 지대인 양산 지방의 관리(혹은 세력가)로 있었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왜·백제로부터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었고,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왕자 두 명을 고구려와 왜에 각각 인질로 보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 두 아우를 구하고자 하는 눌지마립간의 명을 받들어 박제상은 목숨을 걸고 적국에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