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이령 고개길은 자동차만 다닐 수 없는 길이다. 1968년 울진·삼척에 무장공비가 침투했을 때 이를 소탕하기 위해 미군들이 지도를 들고 두천에 와서 길을 찾았다고 한다. 분명 지도에는 길이 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십이령 고개길은 사람이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짐만이 오고가는 그런 길이었다. 선질꾼들은 흥부장과 울진장에서 생산된 것을...
-
일제강점기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찬옥(瓚玉).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전무풍(田武豊)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전병찬도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진달래목 진달래과의 상록 관목. 흰꼬리진달래보다 꼬리진달래 또는 참꽃나무겨우사리라는 이름으로 식물도감에 수록되어 있다. 높이 약 1~2m이다. 나무껍질은 검은빛이 섞인 잿빛이다. 가지가 한 마디에서 2~3개씩 나오며 어린 가지에는 잔털이나 비늘 조각이 빽빽이 난다. 묵은 가지는 갈색을 띠며 털이 난다. 잎은 길이 3~4㎝, 너...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에 있는 삼국시대 울진 지역의 지명과 역사적 상황을 보여주는 비.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는 삼국시대 신라 진흥왕(眞興王)이 세운 기념비로, 북한산(北漢山)·황초령(黃草領)·마운령(摩雲嶺)에 있는 비와는 달리 비문 서두에 순수관경(巡狩管境)이라는 표현이 보이지 않아 그 성격을 규정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를 척경비...
-
1831년(순조 31) 울진현에 있던 무월동의 마을 규약. 1704년(숙종 30) 송재(松齋) 장만년(張萬年)은 진사 장겸(張謙)의 11세손으로 태어났다. 예의와 행실이 바르고 근검 절약하여 선인들의 유업을 굳게 지키면서 자수성가하여 1740년경 울진읍 호월리 227번지[호월1길 45-8]에 현 기지(基地)를 택해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술좌진향(戌座辰向)으로 16간...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몽룡(夢龍), 호는 창유(暢幽). 학산공(鶴山公) 노우명(盧佑命)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노종만(盧鍾萬)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
일제강점기 울진 지역에서 조직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단체. 창유계는 일제강점기 후반 울진적색농민조합이 해체된 이후 이 조합의 주도적 인물이었던 최학소, 전원강(田元江), 남왈기(南曰紀), 남원수(南源壽) 등이 이전의 적색농민조합운동을 계승하고자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1939년 조직했던 계 조직 형태의 비밀결사이다. 계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함과 더불어 일제의 패망과...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서식하는 외떡잎식물 천남성목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약 70㎝이다. 땅속으로 뻗어 나가는 뿌리줄기는 굵고 마디가 많으며 아랫부분에서 수염뿌리가 돋는다. 잎은 뿌리줄기 끝에서 빽빽하게 난다. 잎은 길이 70㎝, 너비 1~2m이고 광택이 있으며 중앙 맥이 돋아나고 아랫부분이 서로 감싸면서 두 줄로 나열된다. 꽃은 6~7월에 연한 황록색으로 핀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창해(滄海). 참판(參判) 수헌공(睡軒公)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소초(素樵) 최대순(崔大淳)이다. 어려서 한학을 익혔으며, 1909년(순종 3) 13세 때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개최된 시회(詩會)에 참가하여 장원을 하였다. 1911년 당시 영남학파의 거두였던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성리학을 탐...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에 있는 무동력 소형 어선. 가이선 어로는 주로 혼자서 하는데, 한 손으로 작은 노를 저으며 수경을 통해 바다 속을 들여다보고 다른 한 손으로 문어·해삼·전복 등을 잡는다. 울진군 죽변면 죽변4리는 6·25전쟁 직후에 70여 명의 북한 출신 피난민들이 터를 잡아 일구었기에 이른바 ‘아바이마을’로 불린다. 아바이마을에 정착한 이들은 함경남도...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행리. 마을 뒤의 산세(山勢)가 척(尺)자와 비슷하다 하여 자산 또는 척산(尺山)이라 하였다. 본래 평해군 원북면(遠北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암곡리(庵谷里)가 통합되어 척산리로 개편, 울진군 기성면에 편입되었다. 척산리의 동쪽은 기성리와 동해(東海)가 있고, 서쪽은 정명천(正明川)의 상류(上流)가 흐르고...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각석문. 마애각석(磨崖刻石)으로도 불리는 각석문(刻石文)은 바위나 절벽에 새겨진 글씨로 금석문의 일종이다. 각석문은 대부분 지명이나 건축물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주로 마을 입구의 큰 바위에 새겨져 지명을 알리거나 명승지에 그 경치와 어울리는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불경과 관련된 구절을 적어 두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일을...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척산리 고인돌군이 위치한 곳은 마을 서쪽의 구릉성 산지가 끝나는 지점으로 동쪽으로는 기성들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동해와는 약 450m 떨어져 있다. 기성들 남쪽으로는 정명천이 휘감아 돌아가듯 바다로 흘러들어 이곳은 고인돌의 입지 조건으로 양호한 편이다. 고인돌은 경사가 완만한 산기슭에 5기가 하나의 군...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 척산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10칸 겹집. 척산면사무소 남쪽에 정명천을 끼고 ⊂자형으로 생긴 야산 골 안에 척산마을이 있다. 오랜 마을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고가가 남아 있는 전통 마을이다. 국도 7호선이 관통하는 남동쪽을 마을 입구로 삼았고, 집들은 골짜기 복판으로 난 골목 양편으로 들어서 있다. 마을 입구에서 비교적 안쪽에 있는...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 새터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신당. 척산리 새터 성황당은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의 국도 7호선 도로변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을 향해 서 있다. 과거에는 음곡이라 불리는 건넛마을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화재로 인하여 이곳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척산리 새터 성황당은 높이 약 1m의 시멘트 외벽에 단칸이며, 일...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 척산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10칸 겹집. 척산면사무소 남쪽에 정명천을 끼고 ⊂자형으로 생긴 야산 골 안에 척산마을이 있다. 순흥안씨가 오래전에 개척한 곳으로 그 후손들이 세거해 온 탓에 고가가 많이 남아 있는 전통 마을이다. 국도 7호선이 관통하는 남동쪽을 마을 입구로 삼았고, 집들은 골짜기 복판으로 난 골목 양편으로 들어서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1리 자산마을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 마을의 풍년과 평화를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우리나라는 마을마다 그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을 모신 당집이 있다. 당집 혹은 당산나무를 신이 깃드는 신성공간으로 여기고 그 곳에서 마을 주민들이 제를 올린다. 제를 지낼 때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준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공동으로 해결하여 결속력을 다진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척산리 고인돌군이 위치한 곳은 마을 서쪽의 구릉성 산지가 끝나는 지점으로 동쪽으로는 기성들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동해와는 약 450m 떨어져 있다. 기성들 남쪽으로는 정명천이 휘감아 돌아가듯 바다로 흘러들어 이곳은 고인돌의 입지 조건으로 양호한 편이다. 고인돌은 경사가 완만한 산기슭에 5기가 하나의 군...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서 열리는 재래시장.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는 조선시대에 정명장이라는 정기 시장이 있었다가 없어지고 1965년 2월 1일에 새로 척산시장이 건립되었다. 척산시장은 매월 1일, 6일, 11일, 16일, 21일, 26일에 열리는 5일장이다. 척산시장의 영업장 면적은 2,212㎡이며,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다....
-
조선 중기 울진 출신 문인 황중윤(黃中允)이 지은 「천군기」의 필사본. 동명(東溟) 황중윤은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아버지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에게 공부하여 가학을 계승하였다. 황중윤의 저술들은 『동명문집』으로 간행되기도 했으나 많은 필사본이 간행되지 않은 채 후손들에 의해 보관되어 왔다. "숭정계유중추(崇禎癸酉仲秋)에 황중윤서(黃中允書)"라고 기록되어 있는...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활동했던 최제우를 교조로 하는 민족종교. 천도교(天道敎)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자 제1대 교주인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1864]가 1860년에 세운 민족 종교인 동학(東學)을 1905년 제3대 교주 손병희(孫秉熙)[1861~1922]가 개칭한 종교이다. 동학은 서학(西學)인 천주교에 상대되는 의미이며, ‘사람이 곧 하늘이요, 하늘의 마...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 있던 암자. 천정동 건너편 백련산 동남쪽 청량산골의 암벽 사이에 있는 석굴로 해발 125m 높이에 터가 남아 있다. 민간에서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이 절에 거주할 때 암석 구멍에서 물과, 아침저녁으로 쌀 2되 가량의 양식이 나왔다고 하여 천량암(天糧蓭)이라 한다. 욕심 많은 중이 구멍이 좁아 쌀이 적게 나온다 하여...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서 천량산 암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천량암 이야기」는 횡재형에 속하는 허욕 금지담이다. 이런 유형의 설화는 속칭 ‘쌀바위’ 전설로 대표되고 있으며, 가난한 절이나 암자와 결부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각 지역에 퍼져 있는 설화의 내용은 대동소이하여 헛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공통의 주제를 갖고 있다. 1998년에...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7월과 9월 사이 더위를 보내기 위해 강이나 개울을 찾아 행하던 놀이. 천렵은 농사가 정착되지 않은 신석기시대 이전에 생존을 위해 물고기, 조개 등을 잡을 때부터 내려오는 풍속이다. 조선시대의 모습을 전하는 풍속화에는 양반들이 천렵을 하는 그림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 중에 김득신(金得臣)의 「천렵풍경(川獵風景)」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우리가 잘 알고...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천로(天老), 호는 백운(白雲). 교수공파 13세손으로 아버지는 주병휘(朱秉輝)이다. 주창렬(朱昌烈), 주창근(朱昌根) 두 아들을 두었으나 생사는 알 길이 없다. 청소년 시절 한학과 지리·역사·수학 등 신학문을 독학하고, 『독립신문』·『황성신문』·『매일신문』 등을 읽고 민족의식을 키웠다. 1896년경 독립협회에...
-
조선 전기 김녕김씨 울진 입향조.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천뢰(天賚), 호는 만은(晩隱). 김녕김씨 울진 입향조이다. 중시조(中始祖)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김녕군(金寧君) 김시흥(金時興)이다. 아버지는 밀양부사(密陽府使) 김지을(金之乙)이고, 어머니는 강릉김씨로 호조참판(戶曹參判) 김한성(金漢聖)의 딸이다. 부인은 평해황씨로 황문경(黃文景)의 딸이다. 1456년(세조 2)...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학술 및 관상적 가치가 높아 보호·보존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천연기념물은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여 법률로 지정한 동물, 서식지, 식물의 개체 및 종과 자생지, 지질·광물 따위를 말한다. 울진군에는 5종의 노거수와 1종의 지질·광물이 지정되어 있다. 1. 울진 수산리 굴참나무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산381-1번지에 있는 수령 330년의 굴참나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에 있는 명승지. 1683년(숙종 9) 울진현령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이 천연대(天淵臺)라 이름 짓고 풍월을 즐긴 이래로 그 이름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울진읍 신림리 마을 입구에는 작은 하천이 흐른다. 하천 바로 옆의 산기슭에는 자연암반이 있다. 암반 위쪽으로 원형으로 석축을 쌓아 마련한 5평 남짓한 터가 천연대이다. 천연대...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서 석호동과 나실동 사이에 있는 남대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8년 북면 나곡리 사람들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울진의 설화』에 수록하였다. 북면 나곡리의 석호동(石湖洞)과 나실동(羅室洞) 사이 해안에는 근동 사람들이 남쪽에 있는 큰 문이라고 하여 남대문(南大門)이라고 부르는 문이 있다. 이 남대문은 해안 서편의 양...
-
북한에서 처음부터 배를 타지는 않았다. 어려서는 만주사변이 일어나서 시장에 가서 천장사를 하였다. 북한에서도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도 많이 없었고 일본인들에 의해 마땅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시기 만주를 오가며 천장사를 행하였다. 그렇게 그럭저럭 장사가 되는 듯 했는데 전쟁이 나면서 중단되었다. 열일곱에 만주를 오고가며 천장사를 소매와 도매를 했던 심정섭은 북한에서...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덕거리에서 천제당과 관련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각 지방마다 산간에는 주민들의 안녕을 위하여 매년 제의를 올리는 제당이 있다. 제사를 모시지 않았더니 마을에 돌림병이 돌거나, 흉년이 들거나 한다는 그럴만한 신당(神堂) 전설이 깃들어 있다. 바로 「천제당 이야기」도 신당 전설과 같은 맥락의 제당 유래담이다.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교황을 세계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파.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1791년 신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으로 선교의 어려움을 겪다가 1882년 한미수호조약, 1886년 한불수호조약 등으로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였다. 1831년 조선교구가 설치된 이래 1998년 말 당시 북한 소재 2개 교구를 포함하여 17개 교구로...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천주교 안동교구 소속 천주교회.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 박해를 피해 충청도에서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로 이주해 온 신자들이 거주하면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후 1957년 5월 24일 춘천교구 소속 삼척천주교회 울진공소가 설립되었다. 1958년 5월 24일 울진공소가 울진본당으로 승격됨에 따라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57...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 굴구지마을에 있는 천지라는 못에 얽힌 부자 지씨에 관한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 굴구지마을 뒷산에는 못이 하나 있다. 이 못은 ‘천지’라고 불렸다. 굴구지마을을 처음 개척한 지 씨는 부자로 살았는데, 어느 날 노승이 찾아와서 시주를 청하였다....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2리 화동 서쪽에 있는 천지소에 얽힌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2리 화동 서쪽의 산꼭대기에 천지소가 위치하고 있다. 천지소는 쇠물탕이라고도 부른다. 천지소의 생성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해발 500미터의 높이로 면적은 약 200평 정도이며, 그 속의...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와 금강송면 왕피리·하원리 사이에 있는 산. 원래 의상대사가 지안삼우(砥雁三羽)를 만들어 날려 보냈더니 2마리는 인도 천축산으로 날아가고 1마리가 이 사찰지로 날아 들어 왔다고 한다. 그 뒤 대사는 이곳에 와서 내가 살 곳이라 정하고 산명을 천축산이라 하여 절터를 개척 하였다. 다섯마리 용이 치수(治水)하여서 절터가 호수가 되는지라 여러 차례...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 소장되어 있는 불영사의 창건기를 새긴 현판. 불영사 시창기 현판에 새겨진 「천축산불영사 시창기(天竺山佛影寺 始創記)」는 1370년(공민왕 19) 한림학사 유백유(柳伯濡)가 쓴 것으로, 기문에 따르면 유백유는 신라의 옛 비석에 근거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전설적인 경향이 강하다. 창건기에 따르면 불영사는 651년(진덕여왕...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의 창건 설화를 알려주는 기문(記文). 불영사의 창건에 관한 기문은 1370년(공민왕 19)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유백유(柳伯濡)가 썼다고 「천축산 불영사기」에 전한다. 유백유는 기록의 근거를 신라 옛 비석으로 밝히고 있다. 유백유의 기록은 불영사와 관련되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불영사의 창건 역사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 소장되어 있는 불영사의 창건기를 새긴 현판. 불영사 시창기 현판에 새겨진 「천축산불영사 시창기(天竺山佛影寺 始創記)」는 1370년(공민왕 19) 한림학사 유백유(柳伯濡)가 쓴 것으로, 기문에 따르면 유백유는 신라의 옛 비석에 근거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전설적인 경향이 강하다. 창건기에 따르면 불영사는 651년(진덕여왕...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숙종(肅宗) 28년(1689) 5월 기유(己酉) 기사에는 ‘울진 죽변진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로 갔다’라는 기사가 있다. 당시 울릉도로 가기 위한 주요 항로로서 죽변이 이용되었음을 대변해 준다. 그러나 일찍이 울릉도로 가기 위한 해로로 죽변이 이용되었음은 기록에서만 확인되는 바는 아니다. 실제로 죽변항은 울릉도와 80마일(128㎞)의 거리로서...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신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청동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구리와 아연 또는 구리와 주석을 합금하여 처음으로 금속기를 사용한 시기를 말한다. 신석기시대와는 달리 무문 토기와 마제 석기를 제작하였으며, 벼농사와 정착 생활을 하였다. 시기는 대체로 BC 10세기경부터 BC 3~4세기경까지로 보고 있다. 울진 지역에서...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1리에서 청룡거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청룡거리」는 전국적으로 전해지는 ‘아기장수 설화’의 유형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평민의 집에 날개 달린 아기장수가 태어났으나 날개가 잘려 꿈을 펴지 못하고 일찍 죽게 되어 실패한다는 내용이다. 「청룡거리」 역시 부모가 아들을 죽이고, 이야기의 끝은 하늘에서 내려온 청룡이 울고...
-
경상북도 울진군 불영사 계곡 일원에서 서식하는 쌍떡잎식물 쥐방울덩굴목 쥐방울덩굴과의 덩굴성 여러해살이풀. 덩굴성 식물로 가는 줄기가 다른 물체를 감고 올라간다. 줄기는 길이 1.5m이며 털이 없고 회백색이다. 잎은 4~10㎝이며 어긋나고 심장 모양 또는 넓은 달걀 모양의 심장형이며, 끝이 둥글거나 둔하다. 잎자루는 길이 3~5㎝이다. 꽃은 7~8월 잎겨드랑이에 길이 1~...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절 터. 청암사는 근남면 구산리 탑평동에 있던 절로 주변의 유물로 보아 남북국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폐사되었다. 청암사지는 근남면 구산3리 탑들마을 일대 논으로 개간된 곳과 능선에 걸쳐 있다. 울진읍 읍내에서 국도 7호선을 타고 남쪽 근남면 방향으로 직진하다가, 성류굴교차로에서...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 청암사지에 있는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석등재. 구산리 석등재는 연화문의 하대석과 간주석 일부로 연화 하대석 이하는 매몰되어 형태를 알 수 없다. 연화문 하대석은 양각의 단엽 팔판복련(八瓣伏蓮)으로 위에 3단의 괴임을 각출(刻出)하고 그 사이에 단엽을 넣었다. 상면 중앙부에는 8각형의 간주석 받침을 호형 1단으로...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정자.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구고동 청암폭포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청암정은 매화면 매화리에 거주하던 만둔(晩遯) 윤상건(尹相健)의 장루지처(杖屢之處)이다. 윤상건의 동생 윤상일(尹相馹)이 형을 위하여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 경개(景槪)가 산수간(山水間)을 통한다. 서쪽의 송노봉, 남쪽의 칠성봉, 동쪽의 향노봉이 우아하다....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학자·효자.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청지(淸之), 호는 대해(大海). 아버지는 목사(牧使) 황우(黃瑀)이다. 1552년(명종 7)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였다. 독서와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였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어 도를 닦으며 즐겼고, 학문을 깊고 세밀하게 연구하였다. 장원서별좌(掌苑署別座)로 있을 때 나라에서 학문과 인품을 훌륭히 여겨...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기성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사설의 대부분이 청춘의 덧없음을 한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청춘가」는 경기민요의 하나로서, 일제강점기 때 음반으로 취입되면서 전국에 널리 퍼진 유희요이다. 통속민요로서 새로운 가사 붙임에 의해 재생산된 대표적인 유희요로 꼽힌다. 1991년 기성면 기성리에 사는 한억란[여, 61]이 부른 것을 울진군의 문화재조사...
-
김대유를 시조로 하고 김명혜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청풍김씨는 마의태자의 후손으로 고려 말에 문하시중을 지내고 청풍부원군에 봉해진 김대유를 시조로 한다. 청풍김씨는 조선시대 동안 정승과 대제학 다수를 배출하였다. 공조참의로 증직된 김명혜가 1710년(숙종 36)에 입향하였다. 김명혜의 후손들이 근남면을 비롯하여 울진지역 일대에...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산. 한 군수가 평해의 안산인 이 산의 산세를 보고 학처럼 보인다고하여 그 뒤부터 청학산(靑鶴山)이라고 부르고, 체학산(滯鶴山)이란 이름은 항상 학이 머물러 있는 듯하다고 하여 유래한 명칭이다. 청학산 앞쪽인 북쪽은 평해성터의 자리가 보이고, 바로 앞은 남대천이 흐르며, 평해평야가 펼쳐져 있다. 동쪽은 직산리와 접하고 서쪽...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활동하는 반핵 청년단체. 핵과 반생명적인 모든 구조 일체를 추방하여 건강한 삶의 틀을 만드는 것을 단체의 설립 목적으로 삼고 있다. 1988년 9월 10일 울진1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한지 50일 만에 고장을 일으켜 가동이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울진군 일대에 핵 문제에 관한 우려가 커져갔다. 이 때 김혜정, 남상민 등 울진 지역 청년들의 주도 하에...
-
경상북도 울진군민들의 체력과 정신을 건강하고 건전하게 육성하기 위한 일련의 육체적인 활동. 울진군에서 체육활동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먼저 소개되었고, 각급 학교 교육을 통해 보급되었다. 이후 청년회 운동부 등의 민간단체가 결성되었고, 이것이 향후 변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울진의 체육 활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00년대 이후 선교사...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체육 관련 단체. 경상북도 울진군에서는 1963년 3월 울진군 체육회 설립을 시작으로 1978년 4월에는 울진군 테니스협회가, 그리고 1983년 2월에는 울진군 축구협회가 설립되는 등 차례로 종목별로 협회의 형태를 띤 체육단체가 결성되면서 울진군 체육 활동의 저변을 확대하고 울진군민의 다양한 체육 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또한 각 종목...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신체를 단련하고 운동 능력을 기르는 일이나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에 사용되는 도구나 시설. 경상북도 울진군의 체육시설은 주로 각 학교의 체육시설에 주로 의존하고 공공시설은 진부한 형편이었으나 1991년 울진읍 연지리에 울진군 체육관이 건립되고, 1995년에는 울진읍 연지리에 울진연호체육관이, 1997년에는 매화면 매화리에 매화종합고등...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산. 한 군수가 평해의 안산인 이 산의 산세를 보고 학처럼 보인다고하여 그 뒤부터 청학산(靑鶴山)이라고 부르고, 체학산(滯鶴山)이란 이름은 항상 학이 머물러 있는 듯하다고 하여 유래한 명칭이다. 청학산 앞쪽인 북쪽은 평해성터의 자리가 보이고, 바로 앞은 남대천이 흐르며, 평해평야가 펼쳐져 있다. 동쪽은 직산리와 접하고 서쪽...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초등 보통 교육기관. 초등학교는 국가에 따라 초등학교, 보통학교, 기초학교, 소학교 등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현대 학교 교육의 제도상 가장 먼저 취학하는 학교로서 국민생활에 필요한 초보적인 일반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다. 따라서 설립자나 지역에 관계없이 공통의 목표 아래 동일한 교육 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근대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국민 교육이 국가...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서 주민들 생활의 기본 단위를 구성하는 취락의 한 유형. 촌락은 도시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혈연과 지연에 기반 한 인간생활의 기본 단위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통합을 이룬 지역집단을 가리킨다. 전통사회에서 주민들은 혈연 및 지연에 기초하고 생업활동과 신앙생활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촌락마다의 관습에 기초한 협동과 제재가 작용하였고,...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최복하는 고려 말 한성부윤(漢城府尹),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 대사간(大司諫) 등을 역임한 후 사직하여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2리 무령현(武靈峴)에 은거하였다. 은거 당시 상국(相國) 이구(李玖)의 관동이군(關東二君)에게 보낸 시에서 “봉지(鳳地)의 사간(司諫)이 선사(仙槎)에 높이 누워/ 일찌감치 어부가의 뜻을 알았네/...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천리 마분동 팽나무거리촌에서 태어난 최사룡에 관한 이야기.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진사 최사룡은 1564년(명종 17) 3월 15일 울진군 북면 덕천리 마분동 팽나무거리촌에 사는 최윤택의 아들로 태어났다. 최진사의 자는 사룡이고, 호는 몽와이며, 대사간 복하의 후손이다. 조선시대 선조 때 강원 감사 동...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충신. 호는 정재(貞齋). 할아버지는 고려 대사간(大司諫) 최복하(崔卜河)이고 아들은 최면(崔沔)이다. 조선 세종 때 벼슬이 삼군도진무사(三軍都鎭撫使)에 이르렀다. 단종에 이어 세조가 즉위하자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아들 최면과 함께 순절하였다. 이 사실은 『세조실록(世祖實錄)』, 『금폭원기(錦幅原記)』, 『홍재전서(弘齋全書)』,...
-
1490년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강릉최씨 입향조. 본관은 강릉(江陵). 아호는 농산(弄山). 시조는 최흔봉(崔欣奉)이고, 분파조는 최안소(崔安沼)이다. 부인은 직장동정(直長同正)을 지낸 울진장씨 장을보(張乙寶)의 딸이며, 아들은 무사직(武司直)을 지낸 최덕윤(崔德潤)과 사정(司正)을 지낸 최옥윤(崔屋潤)이다. 최운생은 산수를 좋아하여 울진군 매야(梅野)에 왔다가...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창해(滄海). 참판(參判) 수헌공(睡軒公)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소초(素樵) 최대순(崔大淳)이다. 어려서 한학을 익혔으며, 1909년(순종 3) 13세 때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개최된 시회(詩會)에 참가하여 장원을 하였다. 1911년 당시 영남학파의 거두였던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성리학을 탐...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명보(明甫). 수헌공(睡軒公) 최응현(崔應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최익한(崔益翰)이다. 울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한문을 수학하였다. 1934년 2월 조선독립공작당 사건으로 혼행(婚行)을 다녀오는 길에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동생 최학소(崔學韶)와 사촌동생인 최경소(崔景韶)·최명소(崔命韶)도 체포되...
-
조선 후기 강릉최씨 울진 입향조. 시조는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 최필달(崔必達)이고, 분파조는 대사헌(大司憲) 최응현(崔應賢)이다. 철종 때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로 사회 기강이 문란해지고 민심이 혼란에 빠지자, 1855년(철종 6) 벼슬을 버리고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일명 골마] 탁적산(托跡山) 아래에 정착하였다. 이곳에서 선현 추모와 강학 수도에 전념하고 가학(家...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족보명은 최중권(崔重權)이고, 자는 도연(度然)이다. 사간공(司諫公) 최복하(崔卜河)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선거(仙居) 최현식(崔鉉軾)이고, 아버지는 최익순(崔益淳)이다. 백운(白雲) 주진수(朱鎭洙)가 세운 만흥학교(晩興學校)에 다니던 중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그 해 4월 11일 매화...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족보명은 최중권(崔重權)이고, 자는 도연(度然)이다. 사간공(司諫公) 최복하(崔卜河)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선거(仙居) 최현식(崔鉉軾)이고, 아버지는 최익순(崔益淳)이다. 백운(白雲) 주진수(朱鎭洙)가 세운 만흥학교(晩興學校)에 다니던 중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그 해 4월 11일 매화...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지역에 살던 효부. 본관은 평해(平海). 아버지는 황영하(黃永河)이고, 남편은 강릉최씨로 최진곤(崔鎭崑)이다. 시아버지는 절름발이이고 남편은 간질병 환자로 가세가 몹시 가난하였으나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시어머니가 임종을 눈앞에 두었을 때 손가락을 끊어 피를 받아 먹였으며, 남편을 위해 단(壇)을 만들어 하늘에 비니 마을 사람은 물론 인근 마을에서도 칭송이...
-
윤촌과 최촌으로 구분되는 매화리에는 가옥에서도 구별된 특징을 갖는다. 윤촌의 가옥들은 오래되었지만 손을 본 흔적이 적거나 또는 새롭게 개조를 하지만, 최촌의 가옥들은 비교적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손을 본 흔적을 가지고 있다.윤촌과 인접한 최촌의 뒤쪽 산록 남쪽에 위치한 최진탁 가옥은 넓은 장방형 대지에 동남향한 본채와 그 앞으로 큰 마당을 둔 것이 특징이다. 정면 4칸...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1283년(충렬왕 9)에 원나라 세조가 일본을 정벌할 때 명주군(溟洲君) 최한주(崔漢住)도 종군하게 되었다. 그런데 동해 바다에서 뜻밖의 회오리바람을 만나 쇠닻이 바위틈에 걸려 닻줄이 끊어지려 하자 최한주가 향을 피우면서 하늘에 아뢰기를 “이 한 몸을 희생하여 여럿의 목숨을 구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다. 최한주는 쇠망치와 ‘정...
-
1971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에 최한주의 행적을 기록하여 세운 비. 1283년(충열왕 9) 원(元)나라 세조(世祖)가 일본을 정벌할 때 명주군(溟州君) 최한주(崔漢柱)가 종군(從軍)하게 되었다. 동해에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있던 배의 닻이 바위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자 최한주가 물속에 들어가 닻을 빼내 배가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최한주가 물 위로 올라와 보니 배는...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현기(鉉琪), 호는 여지(汝智). 사간공(司諫公) 최복하(崔卜河)의 후손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최황순도 동지들과 함께 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사간공(司諫公) 최복하(崔卜河)의 19대손으로 아버지는 최현한(崔鉉漢)이다. 1938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준향계(準香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최효대도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 명절로서 음력 8월 15일이며, 이를 한가위, 중추절이라고도 한다. 이때 울진 지역에서 행하는 의례 및 행위, 먹는 음식 등은 타 지역과 큰 차이는 없다. 여기에서는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덕산1리와 조금리의 사례를 중심으로 추석에 행해지는 풍속과 행위, 음식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가축을 사육하고 그 생산물을 가공하는 산업. 축산업은 토지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각종 가축을 사육하고 그 생산물을 가공하여 인간의 실생활에 필요한 물질을 생산·공급하는 산업을 의미한다. 여기서 축산업을 축산물의 생산은 물론 그 생산된 축산물을 가공 또는 처리하여 유통하는 전 과정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울...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문화 행사.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이루어지는 축제에는 울진대게축제, 울진송이축제, 백암온천축제, 성류문화제, 평해 남대천 단오제, 해맞이 행사가 있다. 2008년 경상북도 축제 현황을 살펴보면, 포항 2개, 경주 1개, 김천 1개, 안동 5개, 구미 1개, 영주 4개, 영천 2개, 상주 1개, 문경 3개, 경산 2개, 군위 5...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주경안과 관련한 석단(石壇) 터. 충효당(忠孝堂) 주경안(朱景顔)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산봉우리에 돌로 단(壇)을 만들고 7년 동안 매일 새벽 닭이 울 때 그 위에서 아군이 승리하기를 하늘에 기원하였던 데서 축천대(祝天臺)라 하였다. 동쪽으로는 국도 7호선이 뻗어 있고, 남쪽으로는 남대천(南大川)이 흐른다....
-
경상북도 울진군의 군목(郡木)으로 소나무과의 상록 침엽 교목 . 울진의 소나무는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의 원형으로 가장 혈통이 좋다는 금강송(金剛松)이다. 금강송은 1992년 울진군목으로 지정되었다. 금강송은 적송, 춘양목, 황장목 등으로 불렸으나 울진군의 관광상품이 되면서 2000년부터 ‘울진소나무’로 통칭하게 되었다. 울진소나무가 잘 보존되고 있는 금강송면...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출산과 관련된 민속. 자녀를 낳기를 원하는 기자속으로는 치성기자와 주술기자가 있다. 울진 지역에서는 산·거목·바위 등 초자연적 존재나 영험이 있다고 믿는 자연물에 대한 치성기자를 행하였다. 바다에 접한 어촌 지역에서는 용왕에게 공을 드리는 ‘해공드리기’에 의해 자녀 낳기를 기원하였다. 울진 지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주술기자도 발견된다. 울진...
-
고려 후기 평해군수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호는 백암(白巖). 아버지는 예의판서(禮儀判書) 김원로(金元老)이다. 평해군수로 재직할 때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이름을 제해(齊海)로 바꾸었는데, 동해로 뛰어든 제나라 노중련(魯仲連)의 절개를 따른다는 뜻이다. 그러고는 시 한 수를 써서 벽에 걸어둔 채 행방을 감추었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해의 저 배...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할아버지는 금오장군(金吾將軍)·태자검교(太子檢校)를 지낸 황온인이고, 아버지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황유중(黃裕中)이다. 형제로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황진(黃璡)과 숭록대부삼중대광보국(崇祿大夫三重大匡輔國) 황용(黃庸) 등이 있다. 충렬왕(忠烈王) 때 세자를 위하여 세 번이나 원나라에 갔다 와서 익대공훈...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당(堂). 충효당에 봉안된 효자 주경안은 20세 때 부친이 학질에 걸려 중태에 빠지자 왼쪽 손가락을 잘라 불에 태워 술에 타서 마시게 하였고, 나이 60세 때 노부(老父)가 종기로 오랫동안 고생하자 엄동설한에 기도를 올려 지렁이를 구해 즙을 만들어 종기에 발라 병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석단(石壇)...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충신이자 효자.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여우(汝愚)이다. 아버지는 참봉(參奉) 주세홍(朱世弘)이고, 어머니는 곽씨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나라에 충성스러워 문정왕후(文定王后), 인순왕후(仁順王后), 명종(明宗), 의인왕후(懿仁王后), 선조(宣祖)가 죽었을 때 각각 3년 동안 상을 치르며 죽만 먹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단을 쌓고 7년 동안 매...
-
경상북도 울진군의 충신·효자와 효부·열녀. 예로부터 사회의 기본 윤리로 존중되던 충·효·열의 행적이 있는 인물을 가리킨다. 신라시대부터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하여 충·효·열의 행적이 있는 인물에 정문과 정려를 세워 포장하였는데, 고려시대를 거쳐 유교적 교화를 강화하였던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확장되었다. 울진 지역에서도 충·효·열의 행적이 있는 인물이 많다....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 분포하는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가 낮은 지형. 울진군의 지형은 태백산맥과 태백산맥 동록의 해안저지로 대별될 수 있다. 또한, 태백산맥은 지형적 특성에 의해 다시 중앙산맥과 해안산맥으로 구분된다. 이중 중앙산맥은 온정리-매화천-울진을 연결하는 구조선 서쪽에, 해안산맥은 그 동쪽의 산열을 의미한다. 한편, 해안저지는 태백산맥이 동편에 있고...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치극(致極), 호는 신묵재(愼黙齋).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晋)의 후손이다. 전택오는 7세에 아버지 상(喪)한 이래로 어머니를 정성으로 섬기었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처 김씨와 함께 일주일 동안 북두칠성에 기도를 올려 효험을 보았다고 하며, 어머니 등창에 종기를 돋아났을 때에는 입으로 빨아내어 완치하였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정보(正甫), 호는 치암(致庵). 아버지는 지평(持平)을 역임한 주경안(朱景顔)이다. 주명기는 어려서 모친을 여의고 전신불수가 된 아버지를 항상 옆에서 보살폈다. 노병(老病)에는 붕어죽이 가장 좋다는 말을 듣고는 매일 붕어죽을 해 주었는데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그물을 놓아 붕어를 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
-
조선시대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호는 치재(恥齋). 판서(判書) 홍연(洪璉)의 후손이다. 부모상에 예를 다하였다. 여막을 짓고 묘를 지킬 때에 수달이 쫓겨 와서 구조를 요청하는 듯하였는데 과연 잠시 뒤에 나무꾼이 뒤를 쫓아왔다. 이때 홍상은 이 짐승은 사람에게 해로운 날짐승이 아니니 돌려보내라 일렀다. 또 꿩이 무릎 밑으로 날아들자 쓰다듬어 놓아 보냈다. 마을 사람이 그를 인...
-
오랫동안 살던 생활터전을 버리고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은 화전민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마을을 이루지만 4가구 이상 집단적으로 거주하지 않는 그들의 상황에서 몇십 가구들이 함께 생활해야 함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철거된 집에 맞설 재간이 없었기 때문에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살면서 처음으로 아랫마을로 내려왔고 그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였다. 화전...
-
1995년 매화마을의 앞 팽나무 숲을 기증받은 울진군청에서는 그 부지 위에 울진군 농업기술센터를 건립하였다. 울진군 농업기술센터는 1954년 강원도 울진군 농사교도소로 설립되어 부구와 매화, 평해에 각 지소가 건립되어 운영되었다. 이후 1977년 울진읍 읍내리에 청사를 이전하여 부구와 매화, 평해에 있던 지소를 통합하였으며, 1992년 7개 읍면 상담소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이후...
-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친환경 농법으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 단지. 친환경 농법은 합성 농약, 화학 비료 또는 항생제·항균제 등 생태계를 훼손하고 인체에 해로운 물질을 사용하지 않거나 이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대신 농업·축산업·임업·수산업의 부산물 등과 같은 천연 재료의 활용을 통하여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 방법을 말한다. 이러한 농업 방법은 농업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줄...
-
어떤 농약도, 비료도 뿌리지 않는 매화쌀엿은 말 그대로 깨끗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깨끗한 쌀이다. 이 쌀을 만들기 위해서 매화 사람들은 2월 아니 1월부터 10월까지 많은 땀과 노력을 그들의 논농사에 쏟아 붇는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걱정을 하며, 허리를 펼 날 없이 피를 뽑아가며 알이 꽉 찬 튼실한 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행한다. 그리고 손쉽...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이루어지는 농업 생태계와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인체에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 친환경농업은 농업과 환경을 조화시켜 농업 생산이 이루어지게 하는 농업을 말한다. 지속 가능한 농업 또는 지속농업(Sustainable Agriculture)으로 지칭되기도 하며 농업 생산의 경제성 확보, 환경 보존 및 농산물의 안전성을 동시 추구하는 농업형태이다. 「...
-
예전에는 웬만해서 울진을 살기 좋은 땅이라고 자랑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긴 동해안에 어촌이 많은 지역, 태백산맥이 서쪽을 가로막아 지역 개발이 어려운 지역으로 소문나 있었다. 울진은 가난을 면치 못하는 산간오지의 벽촌, 기회의 땅이 아니라 기회 있으면 떠나야 하는 땅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오면서 그나마 가지고 있던 청정...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있는 산. 칠보산의 칠보라 함은 인재등과의 보, 충절의 보, 백자천손의 보, 교역의 보, 어족의 보, 육축의 보, 온화의 보를 뜻한다. 태백준령이 뻗어 내려 이루어진 산으로 매가 보배를 안고 하늘을 나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동해의 일출을 맞는 매방울 동산이다. 칠보산은 해안산맥이 지나는 능선이 펼쳐 있어 동해에서 보면...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1리에서 칠보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칠보산 이야기」는 매가 보배를 안고 막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국을 이룬다고 하여 이름을 붙였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경기도 화성군에 있는 칠보산에도 전해진다. 화성군의 칠보산 전설에는 옛날부터 8개의 보물[산삼, 맷돌, 잣나무, 황계수닭, 범절, 장사, 금, 금닭]이...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경보(敬甫), 호는 물재(勿齋)·칠휴거사(七休居士). 평해군(平海君) 손익담(孫翼淡)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군수 손밀(孫密)이고, 어머니는 정선군사(旌善郡事) 조온보(趙溫寶)의 딸이다. 부인은 평산신씨로 감찰 신자의(申子儀)의 딸이다. 1451년(문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453년(단종 1) 증광문과에...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칭칭이」는 지역에 따라 「칭칭이 소리」, 「치기나 칭칭 나네」, 「쾌지나 칭칭 나네」로도 불리는데,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즐겁게 부르는 노래로 울진 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잘 알려진 소리이다. 후렴구의 ‘치야칭칭’이나 ‘쾌지나칭칭’은 임진왜란 때 “[왜군 장수]가등청정이 오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