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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있는 작은 암자. 전언에 의하면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을 보고 홀연히 깨쳤다고 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 하고 섬 이름을 간월도(看月島)라 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李成桂)에게 보낸 간월도 어리굴젓이 궁중의 진상품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1530년(중종 25) 찬술한 『신증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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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개심사의 ‘개심(開心)’은 마음을 열어 깨달음을 얻으라는 의미이며, 백제 때 지어진 사찰로 전해지고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개심사 사적기」에 의하면 “진덕여왕 5년, 의자왕 14년에 혜감국사(慧鑑國師)가 서산 개원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개심사 사적기」는 근현대의 기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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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고구현은 현재 서산시 해미면·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에 해당된다.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이다. 이후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고구현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운데 하나였다. 고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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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도의 수군 편제에 따라 서산에 속해 있던 방어 시설. 고려 후기 서해안 지역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여 1373년(공민왕 22)에는 태안군이 폐군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서해안 일대에 군사 시설을 마련하면서 파지도에 성을 쌓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 들어와서는 고파도에 파지도만호진을 설치하였고, 태종 때에 파지도만호영을 태안 호리로 옮기면서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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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성위(富城尉)[서산현령]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추봉된 김광세(金光世)이고, 아버지는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을 지낸 김경량(金鏡亮)이다. 김주정(金周鼎)[1228~1290]은 1257년(고종 44)에 음서로 부성위가 되었다. 부성위로 제수되었을 때, 몽고병이 대대적으로 침략하자 적을 방어하고 백성들을 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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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던 국영 목장. 조선 전기 서산 지역에는 다리곶(多利串)·흥양(興陽)·토진(土津)·맹곶(孟串)에 목장이 산포되어 있었는데, 1426년(세종 8)에 네 목장의 말을 합쳐 방목할 수 있는 곳을 물색한 결과 홍주(洪州)의 대산곶(大山串)으로 결정되었다. 대산곶은 물과 풀이 모두 풍족하고, 목장을 축조하는 공역도 편리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4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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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도비산 봉수(都飛山烽燧)는 안국산 봉수(安國山烽燧), 주산봉수(主山烽燧)와 더불어 서산시 관내에 자리하고 있는 3개의 봉수대 중 하나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서산군조에 “도비산 봉수는 동쪽으로는 홍주(洪州) 관내 고구(高丘)의 성산(城山)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태안(泰安)의 주산(主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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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에 있었던 역(驛). 몽웅역은 고려 태조 때 설치되어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현(縣)의 서쪽 9리에 있었다 하고, 딸린 지도의 서쪽에 역촌(驛村)이라는 지명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암리 역말이라는 마을에 해당된다. 몽웅역은 남동쪽으로는 운주[홍성]로 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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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문수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1973년 발견된 서산 문수사 금동여래좌상 복장유물에 따르면 적어도 1346년(충목왕 2) 이전에 문수사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1530년(중종 25) 찬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기록이 보이지만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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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고, 밀양을 본관으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세거 성씨.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조선 전기의 각종 기록 중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그리고 『호산록(湖山錄)』의 서산 성씨조에 ‘서산의 속성’, ‘지곡의 촌성’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 조선 후기의 『여지도서(輿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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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 부석사(浮石寺)는 부석사 극락전(浮石寺極樂殿)에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석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浮石寺極樂殿木造阿彌陀如來坐像)이 있었던 고려 시대의 사찰이다. 돌이 떠 있다는 ‘부석(浮石)’이라는 절 이름은 마치 서해 바다에 떠 있는 절이라는 신비감을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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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부춘산 봉수(瑞山富春山烽燧)는 옥녀봉 뒤쪽 옛 북주산성(北主山城) 내에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북산봉수동응해미현안국산 서응태안군백화산(北山烽燧東應海美縣安國山西應泰安郡白華山)”이라 기록되어 있어 당시 당진의 안국산[당시 해미현]과 태안의 백화산을 연결하던 봉수임을 알 수 있다. 북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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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서산시청에서 서산시 온석동 방향으로 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700m 정도 들어가다 보면 향교골이 보인다. 향교골로 난 골목길을 따라 250m 정도 더 들어가면 옥녀봉과 성왕산 자락이 만나 배산을 형성하는 곳이 있는데, 서산향교(瑞山鄕校)는 이곳에 동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산향교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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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에 설치된 군(郡). 서산군(瑞山郡)이 탄생하게 된 데는 고려 시대 이 지역 인물인 정인경(鄭仁卿)의 공로에서 비롯되었다. 정인경은 남송(南宋) 귀화인의 후예로 고종 때에 내침한 몽고군을 아산 지역에서 여러 차례 격파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에 그는 충렬왕 대에 시종1등공신이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부성현이 서산군으로 승격되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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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서주목(瑞州牧)이 탄생하게 된 데는 고려 시대 이 지역 인물인 정인경(鄭仁卿)의 공로에서 비롯되었다. 정인경은 남송(南宋) 귀화인의 후예로 고종 때에 내침한 몽고군을 아산 지역에서 여러 차례 격파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에 그는 충렬왕 대에 시종1등공신이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부성현이 서산군으로 승격되었다가 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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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세거 성씨는 15세기 전반까지 각 읍 성씨의 존재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주요한 사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토성(土姓), 조선 시기의 재지 세력으로 동성(同姓) 마을[집성촌]의 성씨들이 대표적이다. 세거 성씨는 전근대 사회에서 지역 사회의 토착 세력으로 향촌 사회를 좌우하며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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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에 설치되었던 진(鎭). 순성진(蓴城鎭)은 1397년(태조 6) 이루어진 지방 군제 개편에 따라 서해안 수호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진을 설치하고 지군사(知郡事)를 두어 관할하던 곳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적으로 시행하였는데, 이는 고려 말부터 자행된 극심한 왜적의 침입에 대처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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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과 운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에 해당된다. 이후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여미현(餘美縣)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운데 하나였다. 여미현이라는 지명이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 시대부터이다. 『삼국사기(三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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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역로의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역원은 전통 시대 역로(驛路)에 설치되었던 국영 숙식 시설이다. 관리가 파견되어 역마와 역로를 관할하고, 길을 지나는 관원에게 말과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공문서의 신속한 전달과 관수 물자를 운반하는 육상 교통의 핵심 기관이다. ‘역(驛)’은 대로변에 12㎞마다 설치한 교통 통신 조직이라면, ‘원(院)’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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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순부(淳夫), 호는 저정(樗亭). 아버지는 유방택[류방택, 柳方澤]이고, 동생은 유백순(柳伯淳)이다. 유백유(柳伯濡)는 동생 유백순과 함께 이색(李穡) 밑에서 공부하였는데, 사람들은 형제를 ‘유씨쌍벽(柳氏雙璧)’이라고 불렀다. 유백유는 목은이색의 손서(孫壻)이다. 유백유는 춘추관수찬으로 박실(朴實)·김도(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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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서령[서산]. 정당문학[고려 시대 중서문하성에 설치된 종2품의 관직]을 지낸 유성간(柳成澗)의 6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서령부원군 유성계(柳成桂)이며, 아버지는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유숙(柳淑)이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재차 침입해 오자 왕이 안동으로 피난하였고, 그때 왕을 호종하던 유실(柳實)은 그 공을 인정받아 공신으로 책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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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지역을 목으로 승격시켜 달라고 상소를 올린 인물. 본관은 알려지지 않았고, 아버지는 이산(李山)이다. 이상(李相)은 고려 시대 이후 서산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토착 세력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성씨 조에는 지곡과 인정에 토착 성씨인 이씨가 살고 있다고 적혀 있다. 지방의 행정 체제 개편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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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일락사는 663년(문무왕 3) 의현선사가 세웠다고 하지만 의현선사란 인물을 확인하기 어렵다. 1918년 제작된 「일락사 대웅전 중창기」에 의하면 1487년(성종 18), 1530년(중종 25), 1649년(인조 27)에 걸쳐 여러 차례 중창하였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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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정해현은 현재의 서산시 해미면 지역에 해당된다. 고려 태조 때에 고구현(高丘縣)의 땅을 분할하여 정해현이 만들어졌다.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에 해당된다.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정해현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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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대산읍·성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지곡현은 현재 서산시 지곡면, 대산읍, 성연면 일대에 해당된다. 고려 시대에 현재 서산시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부성현(富城縣)에는 속현이 2개 있었다. 지곡현은 소태현(蘇泰縣)과 함께 부성현에 소속되어 있었다. 지곡현이라는 지명이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 시대부터이다. 『삼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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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마한의 소국. 기원전 3~2세기 무렵 한반도 중·남부 경기·충청·전라 지역에서는 세형동검 문화의 발전 및 점토대토기의 파급과 함께 다수의 소국으로 구성된 마한 연맹체가 새롭게 성장·발전하였다. 기원후 3세기 후반 무렵에 편찬된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三國志)』 한조(韓條)에는 마한에 54개 소국이 있었다는 사실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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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임시로 설치한 태안군 치소. 태안군은 고려 후기인 1373년(공민왕 22)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화를 모면하기 위해 서산으로 치소(治所)를 이전하게 된다. 현재 서산시의 어느 곳에 위치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19, 충청도 태안군(泰安郡) 궁실(宮室)조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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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땅과 자연 형세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風水地理)는 인간의 삶이나 죽음과 관련된 장소, 가령 묘지, 가택, 관청, 사찰, 마을, 도시, 수도 등의 입지 선정 및 방위 배치, 공간 구성 등에 사용해 온 한국의 전통 지리학이자 공간 인식 체계이다. 풍수는 인간의 삶과 관련된 자연환경 그리고 인간과 환경 간의 관계 등에 관심을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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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풍전리(豊田里)는 조선 시대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에 속한 풍전역(豊田驛)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도 풍전역을 확인할 수 있어 그 명칭의 기원이 조선 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89년(정조 13)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역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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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에 있는 조선 시대 누정(樓亭). 서산 해미읍성은 1417년(태종 17)부터 1421년(세종 3) 사이에 당시 덕산(德山)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을 해미로 옮기고자 축성(築城)되었다. 서산 해미읍성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6호로 지정되었다.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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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1407년(태종 7) 정해현의 ‘해’자와 여미현의 ‘미’자를 따서 해미면(海美面)이라 이름하였다. 조선 시대에 해미현의 동면과 남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동면과 남면에 속한 동리와 서산군 동암면 석천리 일부를 합쳐 서산군 지성면으로 개편하고, 관유리, 귀밀리, 기지리, 대곡리, 동암리, 반양리, 산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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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에서 지방도 647호선을 타고 북동쪽으로 약 1㎞ 정도 가면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 향교말이 나온다.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 향교말로 들어서는 큰길로 접어들면 홍살문이 보이고, 해미향교(海美鄕校)는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미향교는 조선 초 현유(賢儒)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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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의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친 현. 해미현(海美縣)은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합한 서산 지역의 옛 지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정해현은 고려 태조 때 몽웅현(夢熊縣)의 아전 한씨(韓氏)가 큰 공이 있어 대광(大匡)의 작호를 내리고, 홍주(洪州)의 속현이었던 고구현(高丘縣)[현재의 서산시 해미면(海美面)·고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