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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읍 신엄리 정려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0916
한자 涯月邑新嚴里旌閭閣
영어음역 Aewol-eup Sineom-ri Jeongnyeogak
영어의미역 Monument House in Sineom-ri, Aewol-eup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보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적|정려각(旌閭閣)
건립시기/일시 1794년(정조 18)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 지도보기
소유자 밀양박씨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 있는 세 사람의 정려비를 한데 모신 조선 후기의 정려각.

[개설]

『박씨삼정문록(朴氏三旌門錄)』에 따르면 박계곤(朴繼崑)[1675~1731]은 성품이 돈후하고 몸가짐이 신중했으며, 효도와 우애가 남달라 몸을 아끼지 않고 어버이를 공양하여 자식 된 직분을 다 하였다고 한다.

박계곤의 딸인 박씨 부인은 이항춘(李恒春)과 혼인했으나 남편과 일찍 사별한 후 평생 수절하면서 살아갔다. 이에 사람들은 박씨 부인을 정절부인(貞節夫人)으로 칭했다고 한다.

『박씨삼정문록(朴氏三旌門錄)』에는 충비 고소락(高所樂)의 행적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고소락은 박씨 부인의 절행(節行) 소문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박씨를 찾아가서 물종으로 삼아 줄 것을 간청했다.

이에 박씨 부인은 “너와 같은 청춘에 어찌 물종으로 세월을 보낼 수 있겠느냐”며 고소락의 청을 거절했으나 울면서 간청하자 박씨 부인이 고소락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효열록(孝烈錄)』에는 박계곤, 박계곤의 딸 박씨, 계집종 고소락의 행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박계곤은 본 주 엄장리(嚴壯里) 사람이다. 효성은 천성으로 타고 났다.

일찍이 일 때문에 상경하다가 배가 바다 가운데서 파선되어 표착하였는데, 죽음에 임하여 부서진 배의 판자 조각을 하나 주워 부모와 이별하는 두어 마디 말을 쓰고 하늘에 축원하며 판자를 던졌다.

그러자 밀려오는 밀물이 바뀌기 전에 그의 집 문 앞에 이르렀다. 그의 아버지가 그 판자 조각을 가지고 관청에 신고하니 조그마한 배를 띄워 보내서 싣고 돌아왔다. 이 어찌 효성에 감동한 바가 아니랴! 정설(旌楔)이 있다.

박씨(朴氏)는 본 주 엄장리 효자 박계곤의 딸이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자 종신 절개와 지조를 지키며 물을 뿌리고 비로 쓰는 일에 지극하였는데, 이에 정절을 표창하고 조정에 아뢰어 정려문을 세웠다.

고소락은 열녀 박씨의 계집종이다. 그 주인의 정절에 감화되어 만일 사내와 같이 거처하게 되면 그 주인을 가까이 모실 수 없다 하여 평생 시집을 가지 않고 몸을 깨끗이 하여 주인을 섬기었다. 충비(忠婢)로 정려문을 세웠다.”

[위치]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 마을회관에서 서북쪽으로 약 5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변천]

애월읍 신엄리 정려각은 서까래가 내려앉고 축대가 무너지는 등 너무 낡아 2003년 밀양박씨 후손들에 의해 현대적으로 신축되었다. 당시 밀양박씨 문중에서는 애월읍 신엄리 정려각을 문화재로 지정해 줄 것을 문화재위원회에 요청했으나 사료적 가치가 부족하다 하여 지정이 거부되었다고 한다.

[형태]

애월읍 신엄리 정려각 입구에는 효열충 정려문이 세워져 있으며 그곳에는 “이 정문은 1794년(정조 18) 어사 심낙수(沈樂洙)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62세손 효자 박계곤과 그의 딸 열녀와 열녀의 충비의 행적을 임금께 아뢰니 임금께서 정려기(旌閭記)를 만들어 주고 정문(旌門)을 세워 사람들로 하여금 공경하는 마음으로 오래토록 교화하라고 했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애월읍 신엄리 정려각에는 전면 중앙에 효자 박계곤의 정려비, 좌측에 박계곤의 딸인 열부 박씨의 정려비, 그리고 박씨의 계집종인 고소락의 정려비 등 총 3개의 정려비가 세워져 있다.

앞 처마의 중앙에는 효(孝), 좌측과 우측에는 각각 열(烈)과 충(忠)이라는 글자 편액이 걸려 있으며 중앙 내부의 도리에는 심낙수 어사의 「효열충정려기(孝烈忠旌閭記)」가 걸려 있다.

[현황]

박계곤의 정려비에는 “孝子朴繼崑之閭 上之十八年甲寅 四月 一 命旌(효자박계곤지려 상지십팔년갑인 사월 일 명정)”이라는 금석문이 새겨져 있다.

박씨의 정려비에는 “孝烈朴氏之閭 上之十八年甲寅 四月 一 命旌(효열박씨지려 상지십팔년갑인 사월 일 명정)”이라는 금석문이 새겨져 있다.

고소락의 정려비에는 “忠婢高所樂之閭 上之十八年甲寅 四月 一 命旌(충비고소락지려 상지십팔년갑인 사월 일 명정)”이라는 금석문이 새겨져 있다.

애월읍 신엄리 정려각 경내에는 삼강오륜을 의미하는 팽나무와 소나무가 무성하게 서 있다. 밀양박씨 후손들은 애월읍 신엄리 정려각에 모신 효자, 열부, 노비 세 사람에 대해 공평히 시제(時祭)를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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