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해군병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592
한자 海軍病院
영어음역 Haegun Byeongwon
영어의미역 Naval Hospital
이칭/별칭 해군제3병원,해군제주병원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283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순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병원
설립연도/일시 1950년 10월 31일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1953년 11월연표보기
설립자 해군 의무감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었던 해군 의료 기관.

[개설]

1946년 4월 15일 인천에 해군 기지 창설을 시발로 1946년 6월 7일 진해 근해를 중심으로 해상경비를 개시하였고, 목포·묵호·부산·군산·포항·진해에 해군기지를 창설하였다.

1947년 8월 30일에는 미 해군으로부터 38선 이남의 해안경비임무를 인수하여 제주도 해상봉쇄작전 및 여·순사건 진압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창설된 해병대는 진주와 제주 지구 공비 토벌작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웠고, 그 해 11월 28일 제주도에 해병대 주둔의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 8월 27일과 9월 17일에는 제주도 청년이 주축이 된 해병 3, 4기가 출정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수행했다. 이후 해군은 한반도 전 해역의 제해권을 장악하여 해상봉쇄작전 및 지상작전 지원, 전략도서(島嶼) 확보작전, 육전대 참여, 장병수송 등 적극적인 공세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전상자 후송을 위해서 최후방에 해군병원 설립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농업학교 교정에 군정 당시에 쓰던 콘서트 12동을 활용하여 해군병원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설립목적]

한국전쟁 직후 전선의 후퇴로 인해 인천해군병원을 제주도로 이설하면서 해군 전상자와 병자를 후송시킬 후방 병원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한국전쟁 직후 전선의 후퇴로 말미암아 인천해군병원을 제주도로 이설, 1950년 10월 31일 제주농업학교(현 제주관광산업고등학교) 광양 교정에 해군 제3병원을 설치하였다. 외래진료소와 수술실은 부상병 접수가 쉬운 동문로 근방인 기업은행 자리에 있었던 후생의원(원장 고영은)을 강제 수용하여 대처하였다.

제주도는 국방의 중요한 교두보로 인식되어 1950년 12월 12일 제주 해군기지사령부(후에 제주시 오라동으로 이설)가 신설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자 해군병원은 효용이 떨어져 폐쇄하고 진해해군병원으로 흡수되었다. 제주 해군기지사령부는 1974년 1월 28일 제6해역 사령부로 승격되었으며, 1986년 2월 1일에는 해군제주방어사령부로 개편되면서 상주 병력을 위한 해군군의관 파견과 의무실 운영은 지속되고 있다.

[주요사업과 업무]

해군병원은 진료소와 병동을 구분하여 운영됐다. 제주항 동부두를 통하여 후송되는 부상병을 외과, 내과, 치과로 나누어 진료하고 경중의 판별과 수술 여부를 결정하여 진료소에서는 수술과 중환자를 맡았고, 경환자와 장기요양이 필요한 장병들은 병동으로 넘겼다. 병동에서는 적격한 사유에 따라 병원에서 바로 제대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활동사항]

해군 전상자뿐만 아니라 일반 장병들의 상병진료와 입·퇴원 관리 및 한국보육원 원아와 피난민 등의 대민진료에도 힘썼다.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제주도에는 해군병원을 비롯하여 육군보병 2연대, 국방부 조병창, 해군경비부, 육군 제1훈련소 및 부설 98육군병원, 특무대 29사단 등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이들과 연계한 진료활동도 지속됐고, 도내 직장팀과 배구 친선경기를 통해 도내에 처음 배구를 보급하기도 했다.

[현황]

해군병원은 의무중대 규모로 병력은 군의관 5명, 사병 50명 정도가 상주했다. 폐쇄 당시 외래진료소는 2층 건물이었고, 콘서트 병동에는 콘서트당 20~30명 수용이 가능했다. 환자가 많을 때는 간이침대로 병상을 만들어 콘서트마다 40~50명도 입원이 가능했다.

1951년 말에는 해군병원 원장 백기호 소령(백병원장, 문관 출신)과 외과과장 오원선 대위(후에 의무감 역임), 조진규 병동장, 내과와 치과 군의관(성명 미상) 등 5명이었고, 장시영(제주도 의사회 14대 회장) 대위도 외과과장과 병동장을 역임했다. 소령급 원장을 포함, 대위급 군의관 5명과 외래진료소 4명(원장, 외과, 내과, 치과)이 책임졌고, 광양 병동에는 병동장 군의관 대위 1명을 파견하여 관리하였으며, 전체 회진 시에는 전 군의관이 참여했다.

[의의와 평가]

해군병원은 한국전쟁 시에 전상자의 진료와 구호에 힘써 해군병력의 손실을 막고 군의학 발전과 대민봉사에 크게 기여했다.

제주도는 21세기 국제화시대에 정치·경제·문화·군사 등 전략적 거점도시로서 그 가치가 한층 높아짐에 따라 해군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방위력 개선을 위한 국책사업으로 제주 해군기지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지원은 필수요소이기 때문에 해군병원의 부활도 가능할 것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