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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590
한자 抗日運動家
영어음역 hangil undongga
영어의미역 anti-Janpaness movement fighter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강만생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일제의 침략에 대한 저항 운동을 한 사람들.

[개설]

일제 강점기의 제주 지역 항일운동가들의 직업 구성을 보면, 농수산업·상업·신문기자의 순으로 나타난다. 일제 강점기 제주도민의 주업은 농업이었으므로, 주도 세력 가운데 농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농업을 제외하면 항일운동가들의 직업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히 상업·금융업·해운업·자영업과 같은 자본과 밀착된 직업, 교사·신문기자와 같은 지식인 출신의 직업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농어민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일본 제국주의 자본의 국내 유입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교사나 신문기자의 경우 구한말 이래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의 확대에 따라 신교육을 받은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도 세력의 직업 구성은 당시 제주 지역의 사회 운동이 사회, 경제적으로 일정한 경지에 도달해 있는 이들에 의해 주도되었음을 나타낸다.

[변천]

1920년대와 1930년대 초의 항일운동은 중소 자본가와 지식인 위주의 운동이었다. 송종현·한상호·김택수·강창보·윤석원 등 신인회를 중심으로 초기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생활 정도는 모두 보통 이상으로 기록에 나타나 있다.

또한 1929년에 적발되어 피검된 아나키즘에 입각한 ‘우리계’ 소비조합 비밀 결사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경우 매달 3원씩을 출자하여 활동 자금으로 축적시켰을 정도로 자본력을 구비하고 있었다.

한편 일제 강점기 전반의 시기에 분수령을 이루는 최대의 사건인 재건 조선공산당 제주도 야체이카 사건으로 검거된 이들의 경우 거의 절반 정도가 교사·신문기자였다.

이는 당시 제주도 항일운동이 지식인 위주의 상부 지도 조직을 중심으로 한 운동에 주력하였음을 말해준다. 결국 이들은 1932년 해녀 투쟁 이후의 운동을 발전적으로 지속시키지 못하고 대거 검거됨으로써 운동의 맥이 단절되어 버렸다.

이렇게 일제 강점기 전반기의 중소 자본가와 지식인 위주의 운동은 후반기에 들어와서 제주도 야체이카 사건의 검거를 피한 김두경·김경봉·부병훈 등에게 비판을 받았다. 즉 이들은 좌익 농민 조합의 건설을 촉구한 「프로핀테른 9월 테제」(1930년)에 입각하여 각 지역별로 농민 조합을 건설하여 농민 운동을 전개시킬 것을 구상하였다.

이러한 하부 조직 위주의 운동으로 전환하면서 이 시기 항일운동 주도 세력의 직업구성 또한 일제 강점기 전반과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즉 제주도 적색농업조합 창립준비위원회 사건으로 검거된 이들의 직업을 보면 주로 농업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1934년 하귀 야학회 사건으로 검거된 이들과 1935년 서귀면 독서회 사건으로 검거된 이들에게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전체 항일운동가의 학력을 확인한 결과, 중등학교 재학 이상의 고학력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가깝다. 이러한 성향은 일제 강점기의 제주 지역 항일운동이 지식인 위주로 이루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전기 운동가들의 학력은 중등학교 재학 이상의 고학력자가 전체의 70%를 차지한 반면, 후기 운동가들의 경우 거꾸로 보통학교 졸업 이하의 저학력자가 75%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1933년 이후의 운동이 지식인 중심의 상부 조직 건설에서 탈피하여 대중에 기반을 둔 운동(적색농업조합 설립 운동)으로 방향 전환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특징]

일제 강점기 제주도 항일운동이 내륙 지방의 전체 운동과 다른 특징은 일본, 특히 오사카와의 연관성이 깊다는 것이다. 이는 1923년부터 제주도와 오사카와의 직통 정기 항로가 열리면서 제주도민들이 일본을 왕래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던 것에 연유한다.

당시 제주도민들은 생활고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대거 도일, 오사카의 공장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선진 노동 운동을 실제 경험하기도 했다. 그들 중에는 일본 내의 조선노동조합총동맹을 비롯한 조선인 조직과 일본공산당 및 일본노동조합 전국협의회와 같은 일본인의 조직에 참여해 활약하던 이들도 있었다. 김문준·김달준·조몽구·강규찬·현호경·김용해·강창보·송성철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일제 강점기 제주도 항일운동가들 중에는 사회주의 성향의 인사들이 매우 많았다. 타 지역보다 제주 지역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권을 잡은 데에는 나름대로의 역사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제주 지역은 토지가 척박하고 주민들은 대부분 소규모 민유지를 소유한 자작농이었기 때문에 지주 전호제가 발달하지 못했다. 또한 지역 사회를 주도할 강력한 유림 세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근대 이행기에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토착 세력이 미약했다.

오히려 ‘모두가 그만그만하게 살고(三無)’, 섬이라는 조건에서 빚어진 독자적 정치·사회·경제 구조를 오래도록 유지해 왔기 때문에, 문화적 연대감과 공동체 의식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강하다. 이러한 역사적 조건이 사회주의나 아나키즘이 제주 지역에 걸맞은 이념으로 쉽게 파급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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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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