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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문화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894
한자 濟州特別自治道文化賞
영어음역 Jejudo Munhwasang
영어의미역 Jejudo Culture Award
이칭/별칭 제주도 문화상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제도/상훈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허영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행연도/일시 1962년연표보기
주관단체 제주특별자치도
시상일시 12월
시상장소 제주특별자치도청

[정의]

제주특별자치도에서 1962년부터 제주의 문화, 학문, 예술 및 지역 사회 발전에 뚜렷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여하는 상.

[제정경위 및 목적]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상은 1962년 제주 지역의 문화를 발전시킬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제주 지역 문화 예술인과 예술 단체들을 대상으로 일 년에 한 번 수여하고 있다.

대상은 제주 지역에 거주하며 향토 문화 발전에 공적이 뚜렷한 개인(사망자 포함)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제주 지역의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다고 인정되어 추천위원의 추천을 받는다면 제주도민이 아니더라도 상을 받을 수 있다.

수상 인원은 각 부문별로 한 명을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수상자 심사 결과 해당자가 없으면 뽑지 않으며, 전체 수상자가 여덟 명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문별로 두 사람까지 선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부상을 수여하며, 부상은 예산의 범위 안에서 도지사가 정하도록 되어 있다.

[변천]

제주도 문화상은 1962년 제정된 후 1966년까지는 문화상 한 부문에 한 명의 수상자만을 뽑아서 상을 주었다. 이후 1967년부터 문화상 외에 공익상과 개척상을 새로 제정하였고, 1980년에는 문화상을 학술·예술·체육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였다.

1982년부터 1988년까지는 학술·예술·언론·출판 교육·체육·지역 사회 개발 부문으로 나누었으며, 1989년부터 1999년까지는 언론·문화·교육을 교육과 언론 출판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였다. 2000년부터는 지역 사회 개발 부문을 1차 산업, 관광 산업, 해외동포 부문으로 분리해서 시행하고 있다. 2006년 7월 1일 제주도가 제주특별자치도로 개편됨에 따라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시상부문]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상은 학술 부문과 예술 부문, 교육 부문, 언론·출판 부문, 체육 부문, 1차 산업 부문, 관광 산업 부문, 해외동포 부문으로 나누어 각 부분별로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역대수상자]

역대 수상자는 1962년의 현평효를 시작으로, 1963년 홍정표, 1964년 김국배, 1965년 김용수가 수상하였다.

1967년에는 김영돈(문화상)·홍정표 (공익상)·송방식(개척상), 1969년에는 현중화(문화상)·고수선(공익상), 1970년 김정하(공익상)·김군천(개척상)이 받았으며, 1971년에는 개척상 부문 수상자로 임영학이 결정되었다.

1972년에는 최현식(문화상)·박종규(개척상), 1973년에는 부종휴(문화상)·안재호(공익상)·고창보(개척상), 1974년에는 진성기(문화상)·강인선(공익상), 1975년에는 현용준(문화상)·강훈(공익상)·박의경(개척상)이 받았다.

1976년에는 박용후(문화상)·양정근(공익상)·문한종(개척상), 1977년에는 김광추(문화상)·김두후(공익상)·강기완(개척상), 1978년에는 오성찬(문화상)·김정광(공익상)·임경제(개척상)가 받았다.1979년에는 개척상의 수상자를 내지 못하는 대신 양창보와 강통원 두 사람이 문화상 공동 수상자로 상을 받았고, 공익상은 적십자 안전대가 수상하였다.

1980년의 수상자는 안덕면 덕수리(예술)·강용삼(체육)·송원화(공익상)·강무종(개척상), 1981년에는 문기선(예술)·제주외솔회(언론 문화 교육)·이욱형(체육)·김기준(공익상)·정신일(개척상), 1982년에는 문충성(예술)·박성관(체육)·진태준(지역 사회 개발)이 받았다.

1983년에는 김영화(예술)·홍성목(언론 출판 교육)·이인구(체육)·송봉규(지역 사회 개발), 1984년에는 한해룡(학술)·한기팔(예술)·장석권(체육), 1985년에는 현길언(예술)·홍성인(체육)·김한철(지역 사회 개발)이 수상했다.

1986년에는 변시지(예술)·양병윤(언론 출판 교육)·강두진(체육)·김귀중과 민병일이 지역 사회 개발 부문 공동 수상자로, 1987년에는 송상일(예술)·이문교(언론 출판 교육)·김홍빈(체육)이, 1988년에는 김택화(예술)·신수용(체육)·강공권(지역사회개발)이 수상했다.

1989년에는 신행철(학술)·김병택(예술)·양치종(교육)·이기형(언론 출판)·한재원(체육), 1990년에는 한창영(학술)·고영일(예술)·강운옥(교육)·김종철(언론 출판)·김두은(체육), 1991년에는 김용길과 이선문이 예술 부문 공동 수상자로, 교육 부문은 박중흠, 체육 부문은 문무용이 수상했다.

1992년에는 김문홍(학술)·김황수(교육)·성주현(체육), 1993년에는 정인수(예술)·이기휴(교육)·강재량(체육), 1994년에는 이용상과 김원민이 예술 부문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고봉식(교육)·김지훈(언론 출판)·서성옥(체육)이 각각 수상했다.

1995년에는 김창현(학술)·김용해(교육)·김영은(체육), 1996년에는 고영기(예술)·좌봉택(체육), 1997년에는 노홍길(학술)·고두심(예술)·강정은(교육)·문원배(체육), 1998년에는 박행신(학술)·오남련(교육)·백명윤(체육)이 수상했다.

1999년에는 김공칠(학술)·박철희(예술)·신용준(교육)·양조훈(언론 출판) 2000년에는 수상 부문이 늘어서 장영봉(학술)·김종원(예술)·김이종(교육)·김수종(언론 출판)·신영근(체육)·임흥보(1차 산업)·이동규(관광산업)·황창주(해외동포)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01년에는 강민수와 고재완이 학술 부문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강태일(교육)·고시홍(체육)·고천우(관광 산업)·김창휘(해외동포)가 수상하였다.

2002년에는 예술 부문에서 조명철과 부현일이, 교육 부문에서 현화진과 김찬흡, 체육 부문에서 고우방과 김승곤이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고창석(학술)·파트릭 제임스 맥그린치(1차 산업)·김효황(해외동포)이 수상하였다.

2003년에는 현기영(예술)·현승탁(체육)·한윤종(1차 산업)·유하영(관광 산업)·장윤종(해외동포), 2004년에는 김석윤과 문순화가 예술 부문에서 공동 수상하고, 김광호(언론 출판)·김창기(체육)·양민웅(1차 산업)·김길웅(관광 산업)·김홍근(해외동포)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05년에는 손인석(학술), 강영호(예술), 김병찬(교육), 고명수(체육), 홍성보(1차 산업부문), 양두경(해외동포), 2006년에는 허민자(예술)·문정인(학술)·고응삼(교육)·김종배(언론 출판)·이창준(체육)·이시향(해외동포)이 상을 받았다.

[의의와 평가]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상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부문별 시행 제도를 바꾸는 등 명실상부 제주 지역에서 인정받는 문화상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러나 공적이 뚜렷한데도 심사위원의 추천을 받지 못해 수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숨은 공로자를 찾기 위해서는 수상자를 발굴하고 시상해야 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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