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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남신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794
한자 濟南新聞
영어음역 Jenam Sinmun
영어의미역 Jenam Newspaper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 268-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문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지역주간신문
관련인물 강치남|강석범|양태일|정의순|김용수|김윤옥
창간인 고정협 외
발행인 고정협 외
판형 대판[375㎜×595㎜]
창간연도/일시 1967년 8월 10일연표보기
종간연도/일시 1980년 11월 27일연표보기
총호수 1,379호[1980년 11월 27일 기준]
발행처 (주)제남신문사
발행처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 268-1
소장처 제주대학교 중앙도서관 지도보기|제주도서관
소장처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 1[제주대학로 102]|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 414[연삼로 489]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발행되었던 지역 주간 신문.

[창간경위]

『제주매일신보』 창간추진위원회는 제주도 제주시 삼도1동에 사옥과 신문 제작 시설을 준비하고 1967년 8월 10일 제호를 『제남신문(濟南新聞)』으로 변경하여 창간하였다.

『제남신문』은 당초 일간지 발행을 목표로 시설을 갖추어 공보부의 시설 기준 심사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기존 신문사 등의 반대로 일간지 등록이 좌절됨에 따라 주간지로 창간한 것이다.

당시에는 「신문통신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신문 발행이 등록제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허가제처럼 운용되고 있어 새로운 신문 등록을 극도로 제한하는 상황에서 『제남신문』이 발행되었다.

창간 발기인으로는 고정협(高晶協)·오기문(吳基文)·장시영(張時英)·문종후(文鍾厚)·홍순억(洪淳億)·장홍윤(張洪潤)·김용수(金瑢洙)·이덕준(李德俊)·김인봉(金仁奉)·양태일(梁太一) 등 지역 인사 10명이 참여하였다.

[형태]

판형은 대판(375㎜×595㎜)이며,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주 2회 4면을 발행하였다.

지면은 15단으로 편집하여 1~11단은 기사로, 12~15단은 광고로 구분하였다.

[구성/내용]

1면은 지역 과제와 주요 국내외 외신, 사설, 칼럼난인 「위성목」으로 구성하였다. 2면은 논평란인 「탐라시언(耽羅時言)」, 인물 탐방 기사, 고발 기사, 남제주판 기사, 3면은 사회면, 4면은 문화면으로 구성하였다.

『제남신문』은 인물 연재 기사와 장기 연재 기사가 많은 점이 특징이었다. 인물 연재 기사로는 「기업과 인물」, 「명사들의 잊을 수 없는 여인들」, 「회상기-제주와 나」, 「내가 걸어 온 길」, 「사제 교환」, 「하루의 얼을 심는 재일동포들」, 「구국의 횃불」, 「명사의 여름」, 「부를 향해 뛰는 사람들」, 「신입도 일대」, 「뭍의 제주인」, 「새 시대 원로와의 대화」 등이 있었다.

장기 연재 기사로는 「비화 30년(秘話 30년)」(1974. 11. 4~)이 114회, 「제주통사 일제 36년」(1976. 10. 28~)이 80회, 「제주 체육 반세기」(1976. 10. 28~)가 101회, 「제주의 인맥」(1977. 8. 25~)이 79회, 「제주의 향사」(1978. 8. 31)가 185회 연재되었다.

[변천과 현황]

1. 변천

1968년 10월부터 1973년까지는 월요판을 6~8면 발행하였고 화요일에 2~4면을 배부하는 일간지 형태를 유지하다 정부의 물자 절약 시책에 따라 중단하였다.

창간 초기 경영난을 겪던 『제남신문』은 1972년 4월 김봉학(金鳳鶴)을 대주주로 영입하여 회장으로 선임하고 자본금을 1억 원으로 증자하여 책임 경영을 강화한 후 비교적 운영이 안정되었다.

1972년 10월 제주도 제주시 삼도동에 지하 1층, 지상 3층, 연건평 300평 규모의 새 사옥을 준공하여 이전하였다. 또한 본문 활자를 7포인트에서 6.3포인트로 바꾸어 지면을 쇄신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회사 조직도 일부 개편하여 장학부를 신설하여 연수생을 선발하는 등 장학 사업을 시작하였다.

『제남신문』은 창간 때부터 3,000부 내외를 발행해 오다 1972년 경영 혁신 이후 보급을 확장하여 1980년 초에는 1만 2000부까지 발행하였다.

14년간 발행되던 『제남신문』은 1980년 신군부의 등장으로 진행된 1도1사(一道一社) 원칙의 지방 신문 정비 계획에 의해 1980년 11월 27일 지령 1,379호를 발행으로 폐간되었다.

당시 『제남신문』은 김봉학 회장이 신군부의 입법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므로 일간지였던 『제주신문』과의 통합이나 주간지로 계속 발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대표이사 발행인으로는 고정협(高晶協)[1968. 12]·문종삼(文鍾三)[1969. 6]·강치남(康治男)[1969. 9]·강석범(康錫範)[1971. 12]·양태일(梁太一)[1972. 3]·김용수(金瑢洙)[1972. 7]·정의순(鄭義淳)[1974. 4]·김윤옥(金潤玉)[1977. 3~1980. 11] 등이 역임하였다.

편집국장으로는 한치문(韓致文)·김인봉(金仁奉)·고영일(高瀛一)·강용삼(姜龍三)·김종철(金鐘喆)·고원식(高元植) 등이 역임하였고, 상임논설위원으로는 이기형(李琪亨) 등이 역임하였다.

2. 주요 행사

정례 행사로는 1967년 왕자기쟁탈야구대회, 1968년 최강자전바둑대회, 1972년 한라문화상 시상, 1973년 미스제주선발대회, 1975년 새마을봉사상 시상과 가을음악제, 1977년 전도어린이붓글씨대회, 1978년 제주도민걷기대회와 전도낚시대회, 1980년 전도여성독후감모집 등이 있었다.

주요 캠페인으로는 해마다 일선 장병에게 위문 금품 보내기, 군·경·예비군 추석 위문 금품 보내기, 불우 원호대상자 돕기 성금 모금, 새마을 지도자에 『제남신문』 보내기, 1980년 수재민 돕기 성금 모금 등이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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