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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769
한자 鄭岐源去思碑
영어음역 Jeong Giwon Geosabi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Jeong Giwo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43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순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거사비(去思碑)
건립시기/일시 미상
관련인물 정기원(鄭岐遠)
높이 108㎝
너비 45㎝[위]|43㎝[아래]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432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정기원(鄭岐遠)을 기리는 비.

[개설]

정기원은 무신이며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63년(철종 14) 정월에 부임하였으나, 1864년(고종 1) 3월에 사직하여 교체되었다. 재임 중 임술민란(壬戌民亂)을 일으킨 강제검(姜悌儉), 김흥채(金興采) 등을 체포하여 사형시켰고, 평역미(平役米)를 감면하여 금전으로 대체하는 등의 조치를 내렸다. 정기원은 제주 지역에 큰 민란이 발생하자 1863년 1월에 제주방어사(濟州防禦使)가 되어 부임했다.

[건립경위]

좌임(左任) 중에 평역미(平役米)를 감하는 등 제주도민의 부담을 덜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청렴 결백하고 정사에 공정을 기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칭송하여 정기원 거사비를 세웠다고 『증보탐라지(增補耽羅志)』에 기록되어 있다.

[형태]

좌태석(坐台石) 대신 받침돌을 쌓은 위에 가첨석(加檐石) 없이 삼방석(三房石)으로 세워졌다. 비신의 높이는 108㎝, 너비는 위가 45㎝, 아래가 43㎝, 두께는 13㎝이다.

[금석문]

비 앞의 왼쪽에는 “주괴교참 은위병저 손름휼민 심사자존(誅魁矯僣 恩威竝著 損廩恤民 心思自存)”이란 비명이 새겨져 있다.

난을 일으킨 우두머리를 죽여 어지러운 질서를 바로 잡았고, 은혜와 위광(威光)이 아울러 현저하며, 관고(官庫)의 쌀을 덜어서 백성을 구휼(救恤)하였으므로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자력으로 살아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현황]

비의 오른쪽 면에는 건립 연대가 새겨져 있지만 윗부분이 마멸돼 버려 “오월일영작진청(五月日營作鎮廳)”이라는 아랫부분 글자만 판독할 수 있어 언제 세워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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