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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733
한자 張寅植恤民善政碑
영어음역 Jang Insik Hyulmin Seonjeongbi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Jang Insik
분야 종교/유교,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3957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순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휼민선정비(恤民善政碑)
건립시기/일시 1851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장인식(張寅植)
높이 94㎝
너비 43㎝[위]|37.5㎝[아래]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3957

[정의]

제주특별차지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장인식(張寅植)의 선정을 기리는 비.

[개설]

장인식은 1848년 3월에 부임하였다가 1850년 6월에 사임(辞任)한 제주목사이다.

[건립경위]

장인식은 2년 3개월간 재임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삼성사 내에 숭보당(崇報堂)을 세웠으며 배대정(拝待亭)을 해수사(海袖祠)로 개편(改編)하여 해신제(海神祭)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또한 북성 내에 심고당(審固堂)을 세워 군사(軍士)의 사격 연습장으로 쓰게 하였으며, 북학당(北學堂)·서학당(西學堂)·우학당(右學堂)을 복원(復元)하기도 하였다. 1850년 봄에는 의사묘(義士廟)를 정의서당(旌義書堂)에 세우고 오흥태(吳興泰)를 향사(享祠)로, 이예연(李禮延)영혜사(永惠祠)에 종향(従享)하게 하였다.

이와 함께 문무초시(文武初試)를 베풀게 하여 군비를 갖추게 하고 별저고(別儲庫)를 세워 삼읍의 사휼(賜恤)에 대비하도록 했다. 같은 해 봄에는 보리 흉년이 들고 여름엔 홍수가 터지고 가을엔 또 흉년이 들었을 때 도민들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하여 힘썼다. 장인식 휼민선정비는 이 같은 장인식의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형태]

비신(碑身)의 높이는 94㎝, 너비는 위쪽이 43㎝, 아래쪽이 37.5㎝이며 두께는 위아래가 모두 14㎝이다. 비신은 잘려 두 동강이 나 있다.

[금석문]

비의 앞쪽에는 “목사장공인식휼민선정비(牧使張公寅植恤民善政碑)”라 적혀 있고, 뒷면에는 “함풍광년 이월일[咸豊光年 二月日)”이라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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