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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620
한자 李宜植
영어음역 Yi Uisik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보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제주목사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대표관직 제주목사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활동사항]

1846년(헌종 12) 2월 권즉[1792~?]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848년(헌종 14) 3월까지 재임하였다. 1846년 제주 삼읍 원전(元田)의 세숙(稅菽)을 혁파하였다. 또한 남학당·서학당·우학당 등 세 학당을 혁파하였다.

목자(牧子)·방군(放軍)·기수(旗手) 등을 쇄신하였으며, 본영(本營)의 총수(銃手) 1천 2백 명을 따로 설치하였다. 이처럼 제주의 군제 개혁과 변방 수비를 강화할 수 있었던 것은 이의식의 친형이 어영대장 이응식(李應植)이었기 때문이다.

1847년(헌종 13) 봄에 북수구성(北水口城)을 퇴축하고 천일정(天一亭)을 성 위에 건립하였고, 수복문(受福門)을 중인문(重仁門)이라 현판을 바꾸었다. 백성으로부터 원납전(願納錢)을 징수하여 군기(軍器)를 대대적으로 수리하였다. 또 풍운뢰우단(風雲雷雩壇)과 관사를 중수하고 종(鐘)을 녹여 화로와 군기를 만들었다.

1847년에 동문 밖에 있는 연무정(演武亭)을 중수하여 병사의 활쏘기 연습과 훈련을 강화하였는데, 이는 전임 제주목사 때 이양선(異樣船)이 제주에 출몰하였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조치였다.

한편, 1846년 7월 제주판관 송익렬(宋益烈)을 세금을 과다하게 징수하고 사전(私田)을 마구 취득하고 교리와 결탁하여 부정을 일삼았다고 조정에 보고하여 파직시켰다.

[상훈과 추모]

이의식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애월진 석성 안에 사상이공이의식거사비(使相李公宜植去思碑)가 세워졌는데,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애월초등학교 교사 뒤편에 있다. 1852년(철종 2년) 4월 이도리에 사상이공의식선정비(使相李公宜植善政碑)가 세워졌는데,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 소재 제주민속박물관 경내에 있으며, 사상이공의식휼민선정비(使相李公宜植恤民善政碑)가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비석거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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