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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437
한자 五賢壇
영어음역 Ohyeondan
영어의미역 Altar of Five Sages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142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동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1년 8월 26일연표보기 - 오현단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오현단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재지정
성격 역사 유적
건립시기/연도 조선 시대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1421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시대 제주에 유배되었거나 방어사로 부임하여 이 지방 발전에 공헌한 다섯 사람을 배향한 옛 터.

[개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귤림서원이 헐린 후, 1892년(고종 29) 제주 유림들의 건의에 의해 귤림서원에 배향되었던 오현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제단이다. 이곳에는 지금도 오현의 위패를 상징하는 높이 43~45㎝, 너비 21~23㎝, 두께 14~16㎝인 조두석이 각자(刻字) 없이 33~35㎝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다.

[건립경위]

단은 1578년(선조 11)에 조인후 제주판관이 1521년(중종 16) 10월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사사된 충암 김정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적거지에 충암묘를 지은 것이 시초였다.

그 후 1665년(현종 6)에 최진남 제주판관이 충암묘를 현대의 오현단 위치로 옮겨 짓고, 이를 사(祠)로 하였다. 1659년(효종 10) 이회 제주목사가 원래 이곳에 세운 장수당을 재(齋)로 하여 귤림서원이라 현액하였다.

1682년(숙종 8)에는 신경윤이 절제사로 있을 때 예조정랑 안건지를 제주도에 파견하여 귤림서원으로 사액을 하고, 김정, 송인수, 김상헌, 정온의 사현을 봉향하였다. 그러다가 1695년 송시열이 추향됨으로써 오현을 배향하게 되었다.

[현황]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제주성지의 흔적이 있는데, 그 북쪽에 인접하여 오현단이 있다. 1971년 8월 26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문화재 국문안내문]

조선시대에 이곳 제주도에 유배되거나 방어사로 부임하여 이 지방의 교학 발전에 공헌한 다섯 분(5현)을 기리고 있는 제단으로, 이들의 위패를 모시던 귤림서원의 옛 터에 마련되어 있다.

5현은 중종 15년(1520)에 유배된 충암 김정 선생, 중종 29년(1534)에 제주목사로 부임해 온 규암 송인수선생, 선조 34년(1601)에 안무사로 왔던 청음 김상헌 선생, 광해군 6년(1614)에 유배된 동계 정온 선생, 숙종 15년(1689)에 유배된 우암 송시열 선생 등 다섯 분이다.

고종 29년(1892) 제주사람 김의정이 중심이 되어 비를 세우고 제단을 쌓아놓았는데, 원래는 선조 11년(1578) 임진이 목사로 있을 때, 판관 조인준이 가락천 동쪽에 충암 김정을 모시기 위한 충암묘를 지은 것이 그 시초이다. 현종 6년(1665) 판관 최진남이 이 묘를 장수당 남쪽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은 뒤, 숙종 8년(1682) 예조정랑 안건지를 제주도에 파견하여 ‘귤림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여 김정 선생·송인수 선생·김상헌 선생·정온 선생 등 네 분의 위패를 모시도록 하였다. 숙종 21년(1695) 송시열 선생도 함께 모시면서 5현을 배향하게 되었으나, 고종 8년(1871)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 서원이 헐리게 되어, 그 터에 이 제단을 설치하게 되었다.

단내에 있는 5현의 자취로는 철종 7년(1856) 송시열 선생의 글씨로 하여 판관 홍경섭이 바위에 새긴 ‘증주벽립’이라는 글씨와, 김정 선생과 송시열 선생의 ‘적려유허비’가 남아 있다.

[문화재 영문안내문]

This is a memorial altar to Kim Jeong, a scholar-official who was exiled to the island in 1520; Song Insu, a Jeju-do magistrate in 1534; Kim Sangheon, a scholar-official during the 1627-36 Manchu invasions of Korea; Song Siyeol, a scholar-official exiled to the island in 1689; and Jeong On, a scholar-official sent into exile in 1614.

It dates to the reign of King Seonjo when a local official named Jo Injun erected a shrine to Kim Jeong east of the Garakcheon Stream in 1578.

That shrine was moved to here in 1665.

In 1682 it was recognized by the court and officially named Gyullimseowon, at which time the memorial tablets of Song Insu, Kim Sangheon and Jeong On were enshrined.

The tablet of Song Siyeol was enshrined in 1695.

Gyullimseowon was closed down in 1871 by a royal decree to close down all the Confucian shrines in the country.

The altar and a stele were erected at the site of the shrine in 1892 by Kim Uijeong and some other Jeju scholars as a memorial to the five men.

Other relics in the vicinity include a rock on which an inscription honoring Song Siyeol is carved and steles honoring him and Kim Jeong.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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