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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252
한자 申璨翊
영어음역 Sin Chani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대림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학생운동가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대림리
성별
생년 1912년연표보기
몰년 1969년연표보기
본관 평산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1931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 사정회에서 학교 당국은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에게 제적 조치를, 신창진(愼昌珍)양두옥(梁斗玉)에게 유급 조치를 내렸다. 김원요·양두옥·신창진 등이 학교 의식에서 천황의 칙어가 낭독되었을 때 묵념을 거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1931년 3월 7일 졸업식이 열렸을 때, 김원요는 교무실로 가서 담임 야마가와[山川助夫]에게 제적 조치의 부당함에 대해 항의하였고, 담임은 경찰에 알려 김원요는 체포되어 제주경찰서에 수감되었다.

3월 9일 신창진양두옥이 교장실로 가서 스기사키[杉崎勝藏]에게 자신들의 유급 조치에 대해 항의하였고, 홍계표(洪季杓)는 교무실로 가서 교사 다카하시[高橋]와 야마가와에게 김원요의 수감에 대해 항의하였다. 이때 신찬익을 비롯한 고태리(高泰利)·양두옥·고운석(高雲石)·현도선(玄道善)·김두진(金斗珍) 등이 일제히 교무실로 들어가 공공 기물을 던지며 부수었다.

신찬익은 1931년 3월 9일 체포되어 1931년 8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폭력 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항소하였고, 1932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미결 기간 동안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3년 광복절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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