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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245
한자 愼栽祜
영어음역 Sin Jaeho
이칭/별칭 천수(天受)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제주판관|대정현감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성별
생년 1840년(현종 6)연표보기
몰년 1903년(광무 7)연표보기
본관 거창(居昌)
대표관직 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어천찰방|청암찰방|제주판관|대정현감

[정의]

조선 말기 제주판관·대정현감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천수(天受). 아버지는 참판 신상흠(愼尙欽)[1794~1874]이다.

[활동사항]

1862년(철종 13) 제주안핵겸찰리어사(濟州按覈兼察理御使) 이건필(李建弼)[1820~?]이 부임하고 과거를 실시하여 문과에 5명, 무과에 38명을 선발할 때 합격하고 1863년(철종 14) 정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사헌부지평을 거쳐 사간원정언, 평안도 영변의 어천찰방, 강원도 원주의 보안찰방을 역임하였다. 1866년(고종 3) 10월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청암찰방 재임 중 이남재(李南載)[?~1866]의 후임으로 제주판관에 부임하였는데, 1867년(고종 4) 7월 전임지 청암에서의 일로 파직되었다.

제주판관 재임 중인 1866년 겨울 절부(節婦)에 관한 소식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절부의 성은 고씨이고 차귀촌(遮歸村)[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사람 강사철(康士喆)의 아내였다.

강사철이 고기잡이를 하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 표류하자, 부인 고씨는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 소리 내어 슬피 울다가 바닷가 나무에 목메어 죽었는데 홀연히 남편 시체가 떠올랐다.

신재호는 고씨가 자결한 바위에 ‘절부암(節婦岩)’이라 새기도록 하고 부부를 합장하였으며, 고씨가 살던 마을 주민들에게 1년에 한 번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절부암은 1981년 제주도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었다.

1882년(고종 19) 5월 강재오(康在五)[1839~1891] 후임으로 대정현감에 부임하고 1883년(고종 18) 4월까지 재임하였으며, 1898년(고종 33) 2월 채구석(蔡龜錫)[1850~1920]의 후임으로 대정현감에 부임하고 1899년(고종 34) 7월 15일에 떠났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역** 덕분에 궁금한게 풀렸네요^^ 201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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