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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421
한자 金精孟
영어음역 Kim Jeongmaeng
이칭/별칭 김정익(金精益)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 2394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 2394 지도보기
성별
생년 1917년연표보기
몰년 1969년연표보기
본관 김해
대표경력 성산중학교 교사|신창중학교 교사|무릉중학교 교사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김해. 일명 김정익(金精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김원규(金元圭)이다.

[활동사항]

두모리 서당에서 3년 간 한글과 한자를 수학한 후 한림공립보통학교에 편입하였다. 1930년 여름 신창리 출신의 사회주의 항일운동가 좌응신(左應信)의 권유로 신창독서회에 가입하였다. 1931년 5월 5일 한림공립보통학교 재학 중 홍창주(洪昌柱)와 함께 1일 동맹 휴학을 주도하여 퇴학당하였다.

1932년 3월 김두진(金斗珍)·고자화(高子華) 등과 함께 비밀 결사를 조직하였다. 5월 1일 노동절 기념 시위를 계획하여 서당 학생 100여 명과 함께 용수리에서 시위 행진을 하였다. 이후 두모리의 대동소년단에 가입하여 좌응신의 지도로 항일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33년 8월 신창리에 있는 서당이 공립보통학교로 승격하는 것과 식민지 교육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였고, 김윤옥(金允玉)과 함께 소녀 야학소를 개설하여 학생들에게 독립 정신을 고취하였다.

1933년 1월부터 한림리김경봉(金京奉)과 밀접하게 연락하면서 혁명적 제주도 농민조합 창립준비위원회 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37년 4월 1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년 6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48년 제주교원양성소를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 자격 검정시험에 합격하였다. 1950년부터 1968년까지 성산중학교·신창중학교·무릉중학교 교사로 재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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