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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393
한자 金時殷
영어음역 Kim Sieun
이칭/별칭 농산(聾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578
시대 근대/근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578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87년(고종 24)연표보기
몰년 1957년연표보기
본관 김해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김해. 호는 농산(聾山). 아버지는 김봉호(金奉鎬)이다.

[활동사항]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제주에도 그 영향이 미쳐왔다. 제주 출신 김장환(金章煥)은 휘문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하여 쫓기게 되자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조천으로 왔다. 조천 지역 유지 숙부 김시범(金時範)에게 서울의 상황을 설명하였고 김시범은 거사를 결심하였다.

김시범김시은·김장환과 함께 3월 17일부터 조천리 미밋동산에서 거사를 발의하고 동지 규합에 나서 3월 19일까지 14명의 동지를 모았다. 14인의 동지는 김시은을 비롯하여 김시범·고재륜(高載崙)·김형배(金瀅培)·김년배(金年培)·황진식(黃鎭式)·김용찬(金容燦)·백응선(白膺善)·김장환·박두규(朴斗圭)·이문천(李文千)·김희수(金熙洙)·김경희(金慶熙)·김필원(金弼遠) 등이었다.

거사일은 3월 21일로 결정되었고, 신촌리·함덕리 등의 인근 마을에 독립 만세 시위 계획을 알려주며 모두 참가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21일 오후 3시경 김시은김시범·김장환·황진식 등과 함께 제주성내로 행진을 강행하여 신촌리에 이르러 경찰과 대치하였다.

시위대는 경찰 30여 명과 충돌하였고, 김시은 등 13명이 체포되었다. 김시은은 1919년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1920년 4월 8일 만기 출감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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