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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377
한자 金聲久
영어음역 Kim Seonggu
이칭/별칭 덕휴(德休),팔오헌(八吾軒),해촌(海村)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찬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정의현감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성별
생년 1641년(인조 19)연표보기
몰년 1707년(숙종 33)연표보기
본관 의성(義城)
대표관직 정의현감|강원도관찰사|성균관대사성|병조참지|호조참의

[정의]

조선 후기 정의현감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덕휴(德休), 호는 팔오헌(八吾軒)·해촌(海村). 아버지는 용양위 부호군 김추길(金秋吉)이다.

[활동사항]

1662년(현종 3)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69년(현종 10) 식년 문과에서 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 무안현감, 성균관직강, 사헌부지평, 홍문관수찬, 사간원정언 등을 지냈다. 1679년(숙종 5) 사헌부장령 재임 중 남인(南人)이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으로 나뉘면서 탄핵을 받아 제주의 정의현감으로 좌천되었다.

홍문관수찬 재임 중에는 각사(各司)의 비용과 내탕비를 줄여 진휼비에 보충하였고, 정언 재임 중에는 형조판서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 진휼비를 줄였다고 고발하였다.

1689(숙종 15)년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쫓겨나고 남인이 정권을 장악하자 성균관대사성, 사헌부집의, 사헌부헌납, 승정원좌승지, 강원도관찰사, 병조참지 등을 거쳐 호조참의를 역임하였다. 그 뒤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노론이 득세하자 낙향하여 서사(書史)를 즐기다가 일생을 마쳤다.

[저술 및 작품]

시문집으로『팔오헌문집(八吾軒文集)』이 있다. 7권 4책의 활자본으로, 1873년(고종 10) 6대손 김우수(金禹銖)가 간행하였다. 정의현감으로 있을 때 제주 지역의 관사(官事)와 마정(馬政)의 폐단에 대하여 올린 「보제주목사논읍폐장(報濟州牧使論邑弊狀)」과 「논산마구점장(論山馬驅點狀)」 등이 있다.

『남천록(南遷錄)』은 1679년(숙종 5) 정의현감으로 있을 때 각종 사건 및 개인에 관한 일들을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며 예론(禮論)이나 인사 문제 등을 둘러싸고 일어난 당쟁도 언급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안동시의 백록사(栢麓祠)에 위패가 모셔졌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9.15 [저술 및 작품] 수정 <변경 전>『남천록(南遷錄)』은 1676년(숙종 2) 정의현감으로 있을 때 <변경 후>『남천록(南遷錄)』은 1679년(숙종 5) 정의현감으로 있을 때
이용자 의견
한** 저술 및 작품 설명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남천록(南遷錄)』은 1676년(숙종 2) 정의현감으로 있을 때 ------". 그러나 김성구가 정의현감으로 좌천된 해가 1679년이라면, 위 설명의 '1676년(숙종2)'는 '1679년(숙종5)'의 잘못이므로 수정되어야 한다.
  • 답변
  •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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