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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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景晙去思碑 |
영어음역 | Go Gyeongjun Geosabi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Go Gyeongjun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3957![]()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홍순만 |
성격 | 거사비(去思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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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892년![]() |
관련인물 | 고경준(高景晙) |
재질 | 제줏돌 |
높이 | 69㎝ |
너비 | 41.5㎝[위]|37.5㎝[아래]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3957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판관을 지냈던 고경준(高景晙)의 거사비(去思碑).
고경준은 1839년 9월 29일에 중구부사(中柩府事)였던 고영주(高渶柱)의 차남으로 제주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영운(靈雲), 자는 진경(晋卿)이다. 제주 지역의 발전과 유학 발전에 힘쓰다가 1897년 12월 5일에 향년 50세로 별세했다.
고경준은 1833년 8월에 제주판관이 되었고, 1890년에 삼성사(三性祠)를 세웠다. 이외에도 1893년에는 경현사 유허비(卿賢祠 遺墟碑)를 세웠다. 고경준 거사비는 고경준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태석(台石)은 거의 매몰(埋沒)되었고, 비신(碑身)은 높이가 69㎝이다. 너비는 위쪽이 41.5㎝, 아래쪽이 37.5㎝이며, 두께는 위쪽이 13㎝, 아래쪽이 12.5㎝인 제줏돌 비(碑)이다.
비 전면에는 “판관고공경준거사비(判官高公景晙去思碑)”라 새겨져 있고, 뒤쪽에는 “임신유월일(壬辰六月日)”이라고 새겨져 있어 건립 연대가 1892년(고종 29) 6월임을 알 수 있다. 또한 1883년(고종 20) 8월부터 1885년 4월까지 고경준이 제주판관으로 재임했던 것으로 보아 그가 떠난 지 7년 후에 세운 비석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