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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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 우측의 큰 길을 건너오면 제주향교 지경에 도달하게 되는데, 제주향교에는 재미있는 풍수지리가 전한다. 용담동 노인회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예전에는 향교 터가 좋아야 출세하는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 향교 자리는 어느 자리보다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제주향교도 향교 터를 여러 번 옮기면서 선비를 출세시키려 했었다는 것이다. 특히 향교 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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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판관을 역임한 무신. 호는 귤헌(橘軒). 제주목 성안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송신(宋藎), 형은 위죽당(爲竹堂) 송지옥(宋之玉)이다.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구한말 당대의 부호이다. 1892년(고종 29) 7월, 안승관(安承觀)의 후임으로 제주판관에 부임했다가 같은 해 9월에 떠났다. 짧은 기간 재임하면서 자신이 받은 급료를 내어놓고 낡은 폐단을 개혁하여 주민들이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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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787년(정조 11)에 실시한 대윤차(大輪次: 과거에 떨어진 사람에게 다시 보게 하던 시험)에서 표(表) 부분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문과의 초시·복시를 치루지 않고 바로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얻게 되었다. 1789년(정조 13) 식년시 문과에서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1796년(정조 20) 4월 제주목사 이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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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도에 유배된 문신.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조광조가 개혁 정치의 일환으로 실시한 현량과에 천거되었다.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투옥되자,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무죄를 호소하다 1520년(중종 15) 제주도에 유배되어 대정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유배 생활 중 제주 유생들을 가르치는 일로 나날을 보냈는데, 7년 동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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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주. 자는 승경(昇卿), 호는 태호(太湖). 아버지는 형조판서 이지완(李志完)[1575~1617]이다. 1615년(광해군 7) 생원으로서 대북의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영의정 이원익과 함께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 후에 풀려났다. 1630년(인조 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지평·교리·부수찬·장령·집의 등을 거쳐 1647년(인조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