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제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아버지는 찰방 변성보(邊聖輔)[1727~1798]이며 애월읍 남읍리에서 태어났다. 1814년(순조 14) 제주찰리겸위유어사(濟州察理兼慰諭御使)로 이재수(李在秀)[1770~1822]가 부임하고 과거 시험을 실시하여 문과에 4명, 무과에 60명을 합격시켰다. 이때 변경준은 문과에 급제하여 문과의 초시와 복시를 치루지 않고 바로 전시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었던 조선 후기에 세워진 교육 기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으로 재생과 늠료를 두었다. 서당은 종래의 여러 교육 기관과 성격이 다르지만 교육 기관이라는 이유로 특권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의식이 강하였다. 이러한 특권적인 보호는 특히 군역 면제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남학당은 제주목 오등에 있었는데, 지금의 제주특별자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846년(헌종 12) 2월 권즉[1792~?]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848년(헌종 14) 3월까지 재임하였다. 1846년 제주 삼읍 원전(元田)의 세숙(稅菽)을 혁파하였다. 또한 남학당·서학당·우학당 등 세 학당을 혁파하였다. 목자(牧子)·방군(放軍)·기수(旗手) 등을 쇄신하였으며, 본영(本營)의 총수(銃手) 1천 2백 명을 따로 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 이행교를 기리는 비. 이행교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1827년(순조 27) 8월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제주에서 3년 정도 있으면서 이행교는 전임자인 심영석이 추진하던 제주향교 이전을 마무리 짓고 대일관과 홍화각 등을 중수하여 제주 지역의 사학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또한 판관 이의겸이 여색을 탐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848년(헌종 14) 3월 이의식(李宜植)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850년(철종 1) 6월에 사직하고 떠났다. 1848년 정의현감 강이진(姜履鎭)[1798~1865]과 수산진조방장 김기찬(金沂瓚)이 방두포 해변에 일본인 선장 다나카 등 5명이 정박하였다고 보고하자 사정을 묻고 감시하였다. 1848년 12월 산마감목관 김영초(金瀛礎)를...
제주특별차지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장인식(張寅植)의 선정을 기리는 비. 장인식은 1848년 3월에 부임하였다가 1850년 6월에 사임(辞任)한 제주목사이다. 장인식은 2년 3개월간 재임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삼성사 내에 숭보당(崇報堂)을 세웠으며 배대정(拝待亭)을 해수사(海袖祠)로 개편(改編)하여 해신제(海神祭)...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827년(순조 27) 전라우도수군절도사가 되었으며, 1832년(순조 32) 2월 이예연(李禮延)[1767~1843]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834년(순조 34) 7월에 떠났다. 이후 1836년(헌종 2) 충청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다. 제주목사에 재임하던 1832년 연희각 동남쪽에 공제당(共濟堂)을 중수하여 군관(軍官)의 거주처로 하였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2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한응호(韓應浩)의 공덕을 기리는 비. 한응호는 1803년(순조 3)에 공제당(共濟堂)을 상아 동쪽에 세워 군관 집무소로 사용케 하였다. 1834년(순조 34) 봄에는 남학당과 서학당을 각각 건립하였다. 한응호는 1834년(순조 34) 가을, 제주도에 기근이 들자 곡식 600여 석을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