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제주농업학교는 일본사람은 무조건 합격하고, 한국사람은 시험을 보는데 각 처에서 왔다고 한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전라남도 완도, 진도, 영안 등지에서 입학하러 왔었다. 그 당시만 해도 전라남도에 중등교육기관이 없었고 제주도에 을종(나중에는 5년제 갑종으로 승격했음)인 농업학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모집 정원도 농과·축산과 해서 120명밖에...
1947년 3·1절 기념대회가 각 읍·면별로 치러졌고, 제주 북국민학교에는 제주읍·애월면·조천면 주민 3만여 명이 모였다. 제주읍에서는 북국민학교 행사가 오후 2시에 끝나자 곧바로 가두시위가 벌어졌다. 관덕정을 거쳐서 서문통으로 시위대가 빠져나간 뒤 관덕정 부근에 있던 기마 경찰의 말굽에 어린아이가 다치는 사태가 일어났다. 흥분한 관람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하자 곧바로 관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