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돌이나 쇠붙이에 새겨 넣은 글씨나 그림. 금석에 새겨진 문자나 도형은 쉽사리 마모되지 않고 오랜 세월 견뎌내기 때문에 내구성이 높아 과거의 사실을 고증하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금석문은 크게 금문(金文)과 석문(石文)으로 구분된다. 금문은 금속제의 용기, 악기, 무기, 화폐, 인장(印章), 경감(鏡鑑), 범종(梵鐘), 도량형 등에 주출(...
-
조선 후기 제주의 효자. 본관은 밀양. 아버지는 박려한(朴麗漢)이다. 한림읍 옹포리에서 태어났다. 제주목의 서리를 지냈으며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710년(숙종 36) 12월 파직되어 떠나는 제주목사 최계옹(崔啓翁)[1654~?]을 따라 진상품을 싣고 출항하였다가 파선되어 겨우 사서도(斜鼠島) 근처에서 표착하였다. 부서진 배의 판자 조각에 부모와 이별하는 글 ‘...
-
조선 후기 제주위유안핵순무시재어사·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경문(景文), 호는 일환재(一丸齋) 혹은 은파(恩坡). 할아버지는 영의정 심지원(沈之源)[1593~1662], 아버지는 심형운(沈亨雲), 어머니는 승지 김고(金槹)의 딸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가정이 가난하였으나 효행으로 이름이 있었다. 1775년(영조 51) 정시...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 있는 세 사람의 정려비를 한데 모신 조선 후기의 정려각. 『박씨삼정문록(朴氏三旌門錄)』에 따르면 박계곤(朴繼崑)[1675~1731]은 성품이 돈후하고 몸가짐이 신중했으며, 효도와 우애가 남달라 몸을 아끼지 않고 어버이를 공양하여 자식 된 직분을 다 하였다고 한다. 박계곤의 딸인 박씨 부인은 이항춘(李恒春)과 혼인...
-
제주 지역에서 조선시대에 정절을 지켰던 여자. 유교에서 중요시한 덕목 가운데에는 효(孝)와 열(烈)이 있는데, 효는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며 열은 아내가 남편을 잘 섬기는 것이다. 조선조에 태조가 즉위하면서 그 해 7월에 발표된 「즉위 교서」에는 충신, 효자, 의부, 절부의 일은 풍속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이를 널리 권장하고 문려(門閭: 동네 어귀에 세운 문)를 세...
-
조선 후기 제주의 열녀. 효자 박계곤(朴繼崑)[1675~1731]의 딸이며, 이항춘(李恒春)과 혼인하였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게 되자 평생 지조와 절개를 지켰다. 그녀에게는 고소락(高所樂)이라는 몸종이 있었는데 주인의 정절에 감화하여 육십 평생을 시집가지 않고 주인을 섬기었다고 한다. 70세에 세상을 떠나니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정절부인이라 칭찬하고 그 절행을 천거하니, 1794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조선 후기 박씨 부인의 열행(烈行)을 기리는 비. 정려비는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의 행동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나라에서 내려 주던 상이었다. 이항춘 처 박씨정려는 남편이 죽자 평생 동안 절개를 지키며 수절하다 죽은 박씨 부인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세워 준 정려비였다. 박씨 부인은 조선 후기 제주목 엄장리에 살던 박계곤의...
-
조선 시대 제주특별자치도 북제주군에서 부모를 극진히 잘 섬긴 자녀들. 조선 시대 제주도의 효자는 『조선왕조실록』·『탐라지』·『효열록』 등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해당 마을에 효자비를 남겨 후세에 귀감이 되었다. 효자비의 위치를 근거로 파악한 조선 시대 제주 효자들의 출신 지역과 대표적인 효자·효부들은 다음과 같다. 읍·면·리 지역에 효자들이 분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