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제주의 효자. 본관은 밀양. 아버지는 박려한(朴麗漢)이다. 한림읍 옹포리에서 태어났다. 제주목의 서리를 지냈으며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710년(숙종 36) 12월 파직되어 떠나는 제주목사 최계옹(崔啓翁)[1654~?]을 따라 진상품을 싣고 출항하였다가 파선되어 겨우 사서도(斜鼠島) 근처에서 표착하였다. 부서진 배의 판자 조각에 부모와 이별하는 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 있는 세 사람의 정려비를 한데 모신 조선 후기의 정려각. 『박씨삼정문록(朴氏三旌門錄)』에 따르면 박계곤(朴繼崑)[1675~1731]은 성품이 돈후하고 몸가짐이 신중했으며, 효도와 우애가 남달라 몸을 아끼지 않고 어버이를 공양하여 자식 된 직분을 다 하였다고 한다. 박계곤의 딸인 박씨 부인은 이항춘(李恒春)과 혼인...
제주 지역에서 조선시대에 정절을 지켰던 여자. 유교에서 중요시한 덕목 가운데에는 효(孝)와 열(烈)이 있는데, 효는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며 열은 아내가 남편을 잘 섬기는 것이다. 조선조에 태조가 즉위하면서 그 해 7월에 발표된 「즉위 교서」에는 충신, 효자, 의부, 절부의 일은 풍속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이를 널리 권장하고 문려(門閭: 동네 어귀에 세운 문)를 세...
조선 후기 제주의 열녀. 효자 박계곤(朴繼崑)[1675~1731]의 딸이며, 이항춘(李恒春)과 혼인하였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게 되자 평생 지조와 절개를 지켰다. 그녀에게는 고소락(高所樂)이라는 몸종이 있었는데 주인의 정절에 감화하여 육십 평생을 시집가지 않고 주인을 섬기었다고 한다. 70세에 세상을 떠나니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정절부인이라 칭찬하고 그 절행을 천거하니, 1794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조선 후기 박씨 부인의 열행(烈行)을 기리는 비. 정려비는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의 행동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나라에서 내려 주던 상이었다. 이항춘 처 박씨정려는 남편이 죽자 평생 동안 절개를 지키며 수절하다 죽은 박씨 부인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세워 준 정려비였다. 박씨 부인은 조선 후기 제주목 엄장리에 살던 박계곤의...